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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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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올바른 처신에 대하여

寄兩兒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줘라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긍휼히 여거 돌보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개탄하더구나.

 

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느니 한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병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을 지낼 때에는 조그마한 근심이나 질병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며 안부를 전해오고, 안아서 부지해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주고 양식까지 대주는 사람도 있어서 너희들이 이런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은혜를 베풀어줄 사람이나 바라면서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불이 흩어져 있어 은정(恩情)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주고 도와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이 패잔(敗殘)하긴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줄 힘이 없을 뿐이다.

 

남을 돌볼 여력이 없으나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라는 뜻 아니겠느냐?

 

모든 일은 안방 아낙네들로부터 일어나니 유심히 살펴서 조치하고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기분이 화평스러워져 하늘을 원망한다거나 사람을 원망하는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날 밥을 끊이지 못하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이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주어 따뜻하게 해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푼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끓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 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할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몇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 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것을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나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후로는 평상시 일이 없을 때라도 항상 공손하고 화목하며 삼가고 자기 마음을 다하여, 다른 일가들의 환심을 얻는 일에 힘쓰되 마음속에 보담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라.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로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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