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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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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진실한 시를 짓는 데 힘쓰거라

 


 

시는 나라를 걱정해야

접때 성수(惺叟) 이학규(李學逵)*의 시를 읽어보았다. 그가 너의 시를 논평한 것은 잘못을 잘 지적하였으니 너는 당연히 수긍해야 한다.

 

그의 자작시 중에 꽤 좋은 것이 있기는 하더라만 내가 좋아하는 바는 아니었다. 오늘날 시는 마땅히 두보(杜甫)의 시를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시인들의 시 중에서 두보의 시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경(詩經)]에 있는 시 3백편의 의미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경]에 있는 모든 시는 충신 효자 열녀 그리고 진실한 벗 들의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의 발로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으니,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기지 않은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뜻이 세워져 있지 않고 학문은 설익었으며 삶의 대도(大道)를 아직 배우지 못하고 위정자를 도와 민중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니, 너도 그 점에 힘쓰기 바란다.

 

두보의 시는 역사적 사건을 시에 인용하는 데 있어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지어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 출처가 있으니 두보야말로 시성(詩聖)이 아니겠느냐?

 

한유(韓愈)의 시는 글자 배열법에 모두 출처가 있으나 어구는 스스로 많이 지어냈으니 그분은 바로 시의 대현(大賢)이라 할 수 있다.

 

소동파(蘇東坡)의 시는 구절마다 역사적 사실을 인용했는데 인용한 태가 나고 흔적이 있어 얼핏 보아서는 의미를 알아볼 수 없으나 이리저리 살펴보아 인용한 출처를 캐내고 나서야 그 의미를 겨우 알아낼 수 있으니, 그는 시인으로서 박사(博士)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소동파의 시로 말하자면, 우리 삼부자의 재주로 죽을 때까지 시에만 전념한다면 그 근처쯤 갈 수는 있겠지만 사람이 태어나 세상에서 할일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그따위 짓이나 하고 있겠느냐?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전혀 인용하지 않고 음풍영월(吟風詠月)이나 하고 장기나 두고 술 먹는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서너집 모여 사는 벽지 시골 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

 

차후로 시를 지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도록 해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일이나 인용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볼품없는 짓이다.

 

아무쪼록[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국조보검(國朝寶鑑)]* [여지승람(與地勝覽)]* [징비록][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이도보 李道甫가 모은 책-지은이)및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에라야 후세에 전할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혜풍(惠風)유득공(柳得恭)*이 지은 [16국회고시(十六國懷古詩]는 중국사람들도 책으로 간행해서 즐겨 읽던 시인데,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사실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동사즐(東四櫛]은 본디 이럴 때 쓰려고 만들어놓은 것인데 지금은 대연(大宴)*이가 너에게 빌려줄 턱이 없으니 우선 중국의 17사(十七史)에 있는 [동이열전(東夷列傳)] 가운데서 이름난 자취를 뽑아놓았다가 사용하면 될 것이다.

*이학규: 영조46-순조35(1770~1835). 자는 성수, 호는 낙하생(洛下生)으로, 신유교옥이 일어나자 다산과 같이 24년(1801~24)이나 경상도 김해땅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유배지에서도 서울로 매개로 해서 다산과 소식을 주고받은 것 같다. 다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국조보감: 조선왕조 역대 군왕의 치적에서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실록(實錄)에서 뽑아 편찬한 편년체 역사책.

 

*여지승람:[신증동국여지승람(新證東國輿地勝覽]의 약칭. 중종 27년(1532)에 완성된 관찬 인문지리서로 총 55권.

 

*연려실기술: 조선 영조.정조 때 학자 이긍익(李肯翊)이 조선왕조의 역대 사실을 여러 책에서 뽑아 기사본말체로 서술한 역사책으로 총 47권, 도보(道甫)는 이긍익의 아버지 이광사(李匡師)의 자인데 아버지의 저술을 계승하여 아들이 완성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업적으로 착각한 듯하다.

 

*유득공: 영조25~순조7(1749~1807). 자는 혜풍.혜보(惠甫), 호는 영재(冷齋).고운당(古芸堂)이며, 실학파 학자로[발해고(渤海考]를 저술했고[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를 창작했다. 사가(四家)의 칭호를 들었다.

 

*대연[해동역사(海東繹史)]의 저자인 한치윤(韓致奫)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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