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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밖으로행차하다

<책속글-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인재는 세상 모든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보배"라고 보았던 상께서는 인재의 천거를 요구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재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묻곤 하셨다. 모름지기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에 인물이 있기 때문이요,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만큼 유능한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 당신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임금들은 인재를 들여서 쓰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인재를 구별해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그 방법이란 다름이 아니라 인재를 기르고 가려내어 적소에 배치하는 도 道를 말한다. 상께서 1447년(세종29)에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한 것처럼,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들여 쓰고 내.. 더보기
<책속글- 세종, 실록밖으로 행차하다> 세종이 사망했을 때, 사관은 "잠시도 게으르지 않았던 임금"이었다고 평했다. 즉, 그는 즉위한 이후 "매일 사경四更(새벽1~3시)이 되면 옷을 입고, 날이 환하게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보고, 다음에는 윤대(신하들이 임금에게 정치에 관한 의견을 차례로 아뢰던 일)를 행하고, 경연에 나아가기를 한 번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는 것이다. ​ 특이한 점이라면 어려서부터 '책을 놓지 않았다手不釋卷' 는 점을 들 수 있다. 세종은 실제로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가 형 양녕을 제치고 왕위 계승권자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도 '공부하기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 그런데 내가 보기에 세종에게 독서는 일종의 피난처, 즉 '물러가 쉴곳'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비린내 나는 권력 쟁탈을 지켜보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