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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7년

문장강화 中 - 이태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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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재

붓을 들기는 쉽다.
그러나 '무엇을 쓰나?'에서 막연해진다.
어느 영문학자는 '무엇을 쓸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쓸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꿈꾼 것을 적으라"하었다.
지난밤에 꾼 것이든지 며칠 전에 꾼 것이든지 아무튼 자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해가며 적어보라 하였다.


물론 꿈은 아무리 똑똑한 것이라도 현실에 비기면 흐리다.
기억만 흐릴 뿐 아니라 사건도 대체로 허황하다.
그것을 선후를 가려서 남이 알아보도록 적는 것은 현실에서 체험한 일을 적는 것보다 헐씬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쓰나'하고 막연해하는 이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 말이다.
'꿈을 적어라' 하는 말 그대로 고지식하게 꿈을 적어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흐리멍덩한 꿈속에서 쓸 것을 찾느라고 애를 쓰다가 결국엔 '기억이 똑똑한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하필 생각나지 않는 꿈에서 찾을 게 뭐가'하고 스스로 현실로 돌아와 재료를 찾도록 깨달음을 주는 데 이말의 본뜻이 있는 것 같다.


글이 될 만한 재료는 꿈에 비하며 현실에서 무진장 많다.
현실, 인생과 자연, 그 속에서 제재(題材)를 찾는 데는 먼저 자기의 태도가 중요하다.
염세적인 우울한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암담한 제재만 보일 것이요,
몽상적인 낙천(樂天)의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명랑한 제재만 뜨일 것이다.


자기의 철학적인 지반이 확호부동하게 닦인 후에는 자기의 인생관이나 자연관에서 주저할 것이 없겠지만, 아직 그 전 단계에 있는 사람으로는 밝거나 어두운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쳐서 제재를 취해서는 안 된다.


슬픔도 너무 크면 울움이 나오지 않는다.
기쁨도 너무 크면 말이 막힌다.
심각한 것일수록 첫솜씨엔 부적당하다.


제재는 진기해야만 쓰는 것은 아니다.
뉴스재료와는 다르다.
아무리 평범한 데서라도 자기의 촉각으로 느끼기에 달린 것이다.

문장강화 中     - 이태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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