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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책소개-2015년

<난중일기, 1597년 9월.명량 싸움으로 적의 기세를 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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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아침이 밝아 오다.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이다.

하루의 일을 짧게 기록해두었다. 어떤날은 날씨만 적은날도 있다.

난중일기는 인간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중에도 간결하고 두려움에 동요되는 않고 흔들림없는 글귀들이다.

길게쓸 여유가 없을것이란 생각도 든다.

 

몸이 좋지않아 식은땀을 흘리고 잠못이루는 밤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어머니와 자식에 대한 마음 또한 고스란히 전해진다.

활쏘기도 거르지 않으며 항상 준비하는 자세임을 알수 있다.

전쟁에 나아가서는 한치의 물러섬이 없는 용맹함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자의식이 강한 이순신이다.

 

1592년~1598년의 기록이다.

1592년 왜적의 침략이 시작되다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1594년 명·일 간에 강화가 진행되다
1595년 휴전 상태가 계속되는 속에서
1596년 왜적이 드디어 철수하다
1597년 백의종군에 나서다
1598년 마지막 싸움에 나서다

 

그중<1597년 9월. 명량 싸움으로 적의 기세를 꺾다>편을 옮겨본다.

초1일 맑다. 그대로 벽파진에 머물렀다.

(내가 벽파정 위에 내려가 앉았는데, 포작 점세占世가 제주에서 소 다섯 마리를 싣고 와 바쳤다).

초2일 맑다. 새벽에 배설이 도망갔다.

초3일 아침에는 날씨가 맑더니 저녁이 되자 비가 뿌렸다.

뜸아래 머리를 웅크리고 있으니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밤에는 북풍이 불었다.

초4일 날씨가 맑았으나 북풍이 크게 불어서 배들이 가만히 있지 않아 오전하게 지키느라고 애를 먹었다.

초5일 맑다. 북풍이 크게 불었다. 각 배를 서로 보호하기 어려웠다.

초6일 맑다. 바람이 조금 가라앉았으나, 추위가 스며들어서 사람을 괴롭히니, 사공들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초7일 맑다. 바람이 그치기 시작하였다. 망을 보는 일을 맡은 군관 임중형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55척 중에 13척이 벌써 어란포 앞바다에 도착하였는데, 아마 그 목표가 우리 수군에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여러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려 두 번 세 번 엄하게 타일렀다.

오후 4시께 적선 13척이 곧바로 우리가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우리 배들도 닻을 거두고 바다로 나가서 적선을 추격하였더니, 적선은 뱃머리를 돌려 도망쳤다.

먼 바다까지 쫓아가다가 바람과 물살이 모두 우리 쪽으로 향하고, 또 숨어 있는 적의 배도 있을까 걱정되어 더 쫓아가지 않았다.

벽파진으로 돌아와서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기를 "오늘 밤에는 반드시 야습이 있을 것이니 모든 장수들은 미리 알아서 준비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군령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군법대로 시행하리라." 하고 두 번 세 번 거듭 타이르고 끝마쳤다.

과연 밤 10시쯤 적이 쳐들어와서 어둠을 이용하여 탄환을 계속 쏘면서 공격해 왔다.

내가 탄 배가 곧바로 앞장을 서서 지자포를 쏘았더니 그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다.

적들도 우리를 당할 수 없음을 알고 네 번쯤 들어왔다 물러갔다 하면서 화포만 쏘다가 자정이 지나자 완전히 물러갔다.

이들은 전에 한산도에서 승리를 얻은 자들이었다.

 

초8일 맑다 적선이 오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서 대책을 토의하였다.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일개 만호직에나 맞겠으며 수사의 자리를 받을 만한 인물이 못디는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분이 두텁다고 하여 마음대로 임명해 보냈다.

이래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때를 못 만난 것만을 한탄할 따름이다.

 

초9일 맑다. 9일(중앙절), 1년 가운데 손꼽히는 명절이다.

나는 비록 상복을 입은 몸이지만 여러 장수들과 군졸들이야 먹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제주에서 끌고 온 소 다섯 마리를 녹도, 안골포 두 만호에게 주었다.

잡아서 장수들과 군졸들에게 나누어 먹이도록 지시한 것이다.

늦게 적선 두 척이 어란포로부터 바로 감보도로 와서 우리 수군의 수를 정탐하려고 해서 영등 만호 조계종이 끝까지추격하였다.

적들은 당황해서 배에 실었던 물건을 모두 바다 가운데 던져 벌고 달아났다

 

 

초10일 맑다 적선이 멀리 도망갔다.

11일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았다. 혼자 배 위에 앉아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이 외로운 사람이 또 어디 있으랴. 아들 회는 내 심정을 알고 무척 언짢아하였다.

12일 하루 내내 비가 뿌렸다. 배의 뜸 아래 앉아서 괴로운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13일 맑았으나 북풍이 크게 불어서 배가 흔들렸다. 꿈이 이상스러웠다.

임진년 크게 승리할 때의 꿈과 대체로 같았다. 무슨 조짐인지 알 수 없었다.

 

14일 맑다. 북풍이 크게 불었다. 벽파정 맞은 편에서 연기가 올랐다.

배를 보내서 실어 왔는데 바로 임준영이었다.

그가 정탐한 결과를 보기하기를 "전선 2백여 척 가운데 55척이 먼저 어란포로 들어왔습니다." 하였다.

그리고 또 사로잡혀 갔다가 도말해 돌아온 김중걸의 말을 전했다.

"그가 이달 초 6일 해남 땅 달마산에서 왜적에게 붙잡혀 묶인 채로 왜선에 실렸는데 다행히 임진년에 포로가 된 김해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왜적 대장에게 빌어서 결박을 풀고 같은 배에서 지냈는데, 한 밤중에 왜놈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김해 사람이 그의 귀에 대고 몰래 이렇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왜놈들이 모여 의논하기를 '조선 수군 10여 척이 우리 배를 추격해서 많이 쏘아 죽이고 배를 불태웠으니 매우 분하다. 각처의 배를 불러 모아 힘을 합하여 조선 수군을 섬멸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곧장 서울로 올라가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으나 그럴 수 없는 것도 아니어서 곧 우수영으로 전령선을 보내서 피난민들에게 곧 싸움이 벌어질 테니 빨리 육지로 올라가도록 하였다.

 

 

15일 맑다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과 함께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그것은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수가 적은 우리 수군으로서는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서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는 말이 있다. 이는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이라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하고 엄하게 약속하였다.

밤에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하였다.

 

 

 

16일 맑다. 이른 아침에 망을 보던 자가 와서 보고하기를 "수도 없이 많은 적선이 명량으로부터 곧바로 우리가 진치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옵니다." 하였다.

곧 모든 배가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더니 적선 1백 30여 척이 우리 배들을 둘러샀다.

여러 장수들은 양쪽의 수를 헤아려 보고는 모두 도망하려는 꾀만 내고 있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벌서 2마장 밖에 나가 있었다.

나는 노를 빨리 저어 앞으로 나아가며 지자, 현자 등 각종 총통을 마구 쏘았다.

탄환이 폭풍우같이 날아갔다. 군관들도 배 위에 총총히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댔다.

그러나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쳐들어왔다 물러갔다 하였다.

그러나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형세가 어찌 될지 헤아릴 수 없으니 온 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다보며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나는 조용히 타이르기를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 흔들리지 말고 다시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 맞혀라."하였다.

여러 장수의 배를 돌아보니 이미 1마장 정도 물러났고,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멀리 떨어져 가물가물하였다.

배을 돌려 바로 중군 김응함의 배로 가서 먼저 목을 베어다가 내걸고 싶지만,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가 점점 더 멀리 물러나고 적들이 더 덤벼들 것 같아서 나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형편이 되었다.

 

호각을 불어 중군에게 기를 세워 군령을 내리도록 하고 또 초요기를 세웠더니, 중군장인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배 가까이 왔으며,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그보다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하였다.

그러자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뛰어들었다. 또 김응함을 불러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처형하고 싶지만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하겠다." 하였다.

 

그리하여 두 배가 적진을 향해 앞서 나가는데,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두 척에 지시하자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 붙듯하여 서로 먼저 올라가려 하였다.

안위의 격군 일고여덟 명이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니 거의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안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몸둥이를 들거나 긴 창을 잡거나 또는 돌멩이를 가지고 마구 후리쳤다.

배 위의 사람들이 거의 기운이 빠지게 되자 나는 뱃머리를 돌려 바로 쫓아 들어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 댔다.

적선 세 척이 거의 다 뒤집혔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의 배가 뒤쫓아와서 서로 힘을 합쳐서 적을 쏘아 죽여 적은 한 놈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왜인 준사俊沙는 이전에 안골포의 적진에서 항복해 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바다에 빠져 있는 적을 굽어 보더니 "그림 무늬 놓은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바로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馬多時입니다." 하고 말했다.

 

내가 물 긷는 군사 김돌손을 시켜 갈구리로 낚아 올렸더니, 준사가 펄쩍 뛰면서 "정말 마다시입니다."하고 말하였다.

곧바로 명령을 내려 토막토막 잘랐더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우리 배들이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일제히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쫓아 들어갔다.

지자, 현자 대포를 쏘니 그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고, 화살을 빗발처럼 쏘았다.

적선 31척을 깨뜨리자 적선은 도망하고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싸움하던 바다에 그대로 정박할까 싶었다. 그러나 물결도 몹시 험하고 바람도 거꾸로 불어서 우리 편의 형세가 외롭고도 위태로운 듯하여 당사도로 옮겨 가서 밤을 지냈다.

이번 일은 참으로 하늘이 도우셨다.

 17일 맑다. 어외도에 이르렀더니 피난선 무려 3백여 척이 먼저 와 있었다. 

나주 진사 임선, 임환, 임업 등이 보러왔다.

우리 수군이 크게 이긴 것을 알고 서로 다투어 축하를 드렸다.

임선은 많은 양식들을 가지고 와서 군사들에게 주었다.

임치 첨사는 배에 격군이 없어서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18일 맑다. 그대로 어외도에서 머물렀다. 내 배에 탔던 순천 감목관 김탁과 병영의 노배 계생이 적의 탄환에 맞아 주었다.

박영남, 봉학 그리고 강진 현감 이극신도 탄환에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임치 첨사가 왔다.

 

19일 맑다. 아침 일찍 배를 출발시켰다.

바람은 부드럽고 물결도 순하여 무사히 영광 땅 칠산도 바다를 건넜다.

저녁에 영광 법성포에 이르렀더니 흉악한 적들이 육지로 들어와 마을의 집과 창고 곳곳에 불을 질렀다.

해 질 무렵 홍농앞 바다에 당도하여 배를 정박시키고 하룻밤을 묵었다.

 

20일 맑다. 새벽에 떠나 바로 위도에 이르렀더니 피난선이 많이 정박하고 있었다.

황득중과 종 금이를 보내서 종 윤금을 찾게 하였더니 과연 위도에 있으므로 묶어다가 배에 실었다.

이광축, 광보가 보러 왔고, 이지화 부자도 왔다 해가 저물어 그곳에 머물러 잤다.

 

21일 맑다. 일찍 떠나서 고군산도에 이르렀다.

호남 순찰사는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 배를 타고 급히 옥구로 갔다고 한다. 늦게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22일 맑았으나 북풍이 크게 불어서 그대로 머물렀다.

나주 목사 배웅경, 무장 현감 이람이 보러 왔다.

 

23일 맑다. 싸움을 이겼다는 장계 초본을 수정하였다. 정희열이 보러 왔다.

 

24일 맑다. 몸이 좋지 못하여 끙끙 앓았다. 김홍원이 보러 왔다.

 

25일 맑다. 밤에 몸이 몹시 좋지 않고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26일 맑다. 몸이 좋지 않아 하루 내내 나가지 않았다.

 

27일 맑다. 송한, 김국, 배새춘 등이 싸움에 이긴 장계를 가지고 뱃길로 올라갔다.

정제도 같이 나갔는데, 그는 충청수사 처소로 부찰사에게 보내는 공문을 가지고 가는 길이었다.

28일 맑다. 장계와 정 판관이 도로 올라갔다.

 

 


난중일기(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오래된 책방07)

저자
이순신 지음
출판사
서해문집 | 2004-09-0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그날 무얼 하고 있었을까? 난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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