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부, 형제간의 학문 토론) -정약용 지음

728x90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3​부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형제간의 학문 토론

 

答仲氏


예서(禮書)에 대한 연구는 지난가을 이래 많은 질병에 시달리느라 초고를 끝마친 것이 극히 적었습니다.

 

초본(草本) 5편(編)*을 부칩니다만 모두가 절단되고 뒤섞여 문리(文理)가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또 처음의 견해를 바꾸어 정본으로 삼고서도 초본에는 고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우선 심심풀이로 봐주십시오.

 

중간의 초본은 이미 집으로 보내어 아이에게 탈고하게 하였으니, 돌아와야만 질문할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비록 초본이기는 하지만 그중에 잘못된 해석이 있으면 조목조목 논박해서 가르쳐주시고 의당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정밀한 데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더러 갑이다 을이다 서로 우기며 분쟁이 오감으로써 어린시절 집안에서 다투던 버릇을 잇는 것도 절로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또 보내드린 [제찬고(祭饌考)]도 제 나름대로는 앞사람들이 언급하지 못했던 곳을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까마득한 수천년 동안 수백가지로 분분하게 변하였는데, 태뢰(太牢)와 소뢰(少牢), 특생(特牲)과 특돈(特豚) 등은 이름만 남아 있고 그 기구(器具)는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제가 고찰해낸 것은 모두 증거가 있는데 육경(六經)*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고, 또 참작해서 바르게 고친 것도 세상을 대단히 놀라게 하는 데 이르지는 않을 것이니 잘 살펴보아주십시오.

 

제전(祭奠)에만 다섯가지 등급의 제찬(制饌)을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무릇 칙사(勅使)에게 대접할 음식이나 공적인 연회의 음식도 모두 옛것을 고찰하여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또 감사(監司)가 순력(巡歷)할 때의 음식 또한 올봄에 시험삼아 물어보았는데 역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곳 현(縣:강 진현)에서 바치는 음식을 고례(古禮)와 비교해보니 그 상등(上等)의 태뢰(태뢰에는 3등급이 있으니 상등은 12정鼎, 중등은 9정, 하등은 7정이다-지은이)와 견주어 세곱도 넘었습니다.

 

상등의 태뢰는 오직 천자가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나 천자의 초하룻날 음식, 그리고 제후가 왕인(王人)을 대접하는 음식에서나 사용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감사가 하루에 세번 받는 음식이 천자가 초하루에 먹는 음식보다 세갑절이나 더 많으니, 분수를 범하고 법을 업신여기며 조물주가 만든 생물을 함부로 죽이는 것이 이렇게 심할 수가 없습니다.

 

하(夏)나라의 속담에 "무리지어 다니면서 양식을 먹어치워 주린 사람은 먹지 못하고 힘든 사람은 쉬지 못한다. 서로 흘겨보고 비방하며 백성들이 간사하게 변하는데도 왕명을 어기고 백성을 학대한다. 그리하여 음식을 물 쓰듯 낭비하고 유련황망(流連荒亡)*함으로써 제후에게 근심을 끼친다"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감사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풍속이 사치스럽다 하더라도 구장(九章)의 옷*을 감히 입지 못하는 것은 곤의(袞衣)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이며, 구류(九旒)이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이 존재하면 사람들이 그래도 두려워하지만 이름이 없어지면 분수에 넘친 짓을 하고 업신여기며 질서가 무너져서 어찌할 수 없게 됩니다.

아, 누가 이러한 일을 건의하여 아뢸 수 있겠습니까? 무릇 사명을 받아 다니는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 때 모두 옛 제도를 사용하여 태뢰니 소뢰니 특생이니 특돈이니 이름을 규정하고 나서,

 

태뢰를 사용하지 못할 사람이 태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구장과 구류를 입고 쓰는 죄를 범한 것과 같이 다스린다면,

 

수령이나 아전들이 아무리 아부하여 상관을 섬기고 싶어도 결코 감히 가볍게 사형(死刑)의 죄를 범하진 못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반 민가의 혼인과 수연(壽筵) 및 시호(諡號)를 받을 때 벌이는 잔치에 이르기까지 각각 등급을 정하여 모두 그 이름을 구별한다면, 나라의 큰 폐단이 제거될 것입니다. 아, 어쩌면 좋겠습니까?

 

 

 

*초본5편: [상계사전]을 저술할 때의 초본 5편

*육경: 중국의 여섯가지 유교 경전으로 [시경][서경][역경(易經)][춘추(春秋)][예기][악기(樂記)]를 말함. [예기] 대신 [주례]를 넣기도 함.

*유련황망: 놀이에 탐닉하여 벗어날 줄 모르는 것. 유련은 배를 타고 놀이 하는 것이고, 황망은 주색과 수렵을 말한다.

*구장의 옷: 아홉가지 무늬가 있는 천자의 옷.

*구류의 관: 끈이 아홉개 달린 왕이나 제후의 모자

 

 

 

 

 

#유배지에서보낸편지 #정약용 #유배지에서보낸편지필사 #책소개 #책추천 #독서 #책읽기 #주부독서연구소 #다산정약용 #다산 #두아들 #두아들에게보낸편지 #두아들에게주는가훈 #둘째형님께보낸편지 #형제간의학문토론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