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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부, 나의 저서를 후세에 전하거라)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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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저술에 관한 뜻

示二子家誡

 


나의 저서를 후세에 전하거라

 

내 일찍이 조괄(趙括)이라는 사람은 불초자(不肖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괄은 자기 아버지의 저서를 읽어서 후세에 전했으니 훌륭하지 않으냐?

 

내가 나라의 은혜를 입어 실낱같은 목숨만은 보전하여 여러 해 동안 곤궁하게 살아오면서 저술한 책이 많아졌다.

 

다만 한탄스러운 것은 너희들이 내 곁에 있지 않아 미묘한 말과 의미를 전해들을 기회가 적고 문리(文理)가 틔지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습성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몇가지를 억지로 이야기해주어도 듣자마자 잊어먹어 마치 진(秦)나라 효공(孝公)에게 임금 되는 도(道)를 들려주는 것과 같으니 *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내 아들들이 이 모양이니 상자 속에 감추어둔 책들이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까지 전해지기를 기다리기가 어렵겠구나.

나 죽은 후에 아무리 청결한 희생과 풍성한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준다 하여도 내가 흠향하고 기뻐하기는 내 책 한편 읽어주고 내 책 한 구절이라도 베껴두는 일보다 못하게 여길 것이니, 너희들은 꼭 이점을 새겨두기 바란다.

 

[주역사전(周易四箋]은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어낸 책이다.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 통하거나 지혜로운 생각만으로도 알아낼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에 마음을 푹 기울여 오묘한 뜻을 다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나의 자손이나 벗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이니 천년에 한명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여타의 책보다 곱절은 더 아끼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거다.

 

[상례사전(喪禮四箋]은 성인(聖人)의 글을 독실하게 믿고서 만든 것으로, 내 입장에서는 엉터리 학문이 거센 물결처럼 흐르는 판국에 그걸 흐르지 못하도록 모두 냇물을 막아 수사(洙泗)의 참된 학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뜻에서 저술한 책이다.

 

정밀하게 사고하고 꼼꼼히 살펴 그 오묘한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죽은 뼈에 새살이 나게 하고 죽은 목숨을 살려주는 일이 될 것이니, 나에게 천금(天金)의 댓가를 주지 않더라도 감지덕지하겠다.

 

만약 내가 사면을 받게 되어 이 두가지 책만이라도 후세에 전해진다면 나머지 책들은 없애버린다 해도 괜찮다.

 

나는 임술년(1802)봄부터 책을 저술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 붓과 벼루를 옆에 두고 밤낮으로 쉬지않고 일해왔다. 그 결과 왼쪽 팔이 마비되어 마침내 폐인이 다 되어가고 시력은 아주 형편없이 나빠져 오직 안경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이 다 무엇 때문이겠느냐?

 

너희들과 조카 학초(學樵)가 내 저서를 전술(傳述)하여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 학초는 불행히 명이 짧아 죽어버렸으니 너희만으로는 외롭고 세력이 미약하며, 본성이 경전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요즘 세상이 유행하는 시(詩)나부랭이나 대강 알고 얄팍한 맛이나 이해하고 있으니, [주역]과 [상례]에 관한 두가지 책이 결국 민멸(泯滅)하여 빛을 보지 못하게 될까 정말 두렵구나.

 

[시경강의(詩經講義] 800조(條)는 정조대왕께 가장 크게 인정을 받았던 책이다. 임금의 평이 너무도 융숭하였고 조목마다 임금께서 제자(題字)를 달아주셨다.

 

그 무렵 하필 반대파가 우세하여 인쇄는 못하고 말았지만, 교리(校理) 이명연(李明淵)*이 전해준 한 조목만 하더라도 은혜가 넘쳐 깜짝 놀라기에 충분하였다.

 

그중에서 답변한 내용이 평범하거나 계발시켜줄 게 없는 구절은 생각해서 전집(全集) 첫머리에 실어 우리 정조대왕의 어평(御評)이 서문처럼 되게 하는 것이 내 뜻이다.

*진나라 효공에게~걸으니: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뜻.

 

상앙 商鞅)이 진효공에게 왕도를 가르쳐주었으나 효공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을 가리킴. [사기(史記][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온다.

*이명연: 영조 34(1758)~? 자는 여량(汝良), 본관은 전주. 1790년 중광문과에 급제. 교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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