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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5년

<책속글- 한국의 독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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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파들의 독서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요즘 부지런히 독서한다는 사람을 거친 안목으로 내용없는 글들을 뒤적이는데

이것은 소위 술찌꺼기를 먹고 취하려는 자들이나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라고 개탄하면서

독서를 부지런히 해도 글의 뜻과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바로 과거공부 탓이라고 하였고,

현실성 없는 이(理)나 기(氣)같은 사변적인 문제나 따지고 앉아 있는 당시의 성리학은 참된 학문을 해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실학자들은 선비가 독서를 해서 이론을 탐구한 결과가 자기의 입신출세나 명예추구 같은 자기 욕망의 충족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 혜택이 온 세상에 미치고 그 공이 만세에 드리워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

다산 정약용(1762-1836)은

훌륭한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자기의 문제의식 내지 주견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봐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공부하는 사람은 먼저 경전에 대한 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확고하게 한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지고 못 다스려지는 이유의 근원을 알아야 하며,

또 반드시 실용지학에 뜻을 두어서 옛 사람들이 국가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다산은 글을 읽을 때 늘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만민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을 번성하게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

비로소 올바른 독서군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실학자들이 말하는 '독서를 잘하는 사람(善讀書者)'은 소리를 잘 내거나 구두(句讀)를 잘 찍거나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천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글을 쓴 사람의 고심한 자취를 읽을 줄 알고 거기에서 얻은 지혜를 그가 살고 있는 현실에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독서를 하되 실용할 것을 강조하는 실학자들의 독서관은

조선 초기 관료사장파 지식인의 입신양명형의 독서관과 조선 중기 사림도학파의 지식인의 도학주의형의 독서관과 대비해볼 대 당시

의 역사적 과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독서를 한다는 의미에서 '문제해결형의 독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또한 김영은

그의 논문 [이덕무]의 독서론에서 조선후기의 독서경영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그것은 입신출세주의적 독서관과 호학주의적 독서관과 문제지향적 독서관이 그것이다.

첫째, 입신출세주의적 독서관은 문제 그대로 독서를 통해서 부와 귀를 획득하려는 독서관이다.

가난한 사람은 책을 읽음으로써 부하게 되고, 부자는 책을 읽음으로써 귀하게 되고 현명한 사람은 책을 읽음으로써

이익이 될 것이라는 고문진부의 믿음을 가지고 독서 영달할 것을 목표로 공부하는 부류를 말한다.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대표적 예로는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공부하던 양반자제들과 관료사장파들을 들 수 있다.

 

둘째 호학주의적 독서관은 진리 그 자체를 추구하는데서 오는 기쁨을 얻으려는 독서관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던가, "아침에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을 실증내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와 같은

공자의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서관으로 주로 사립파들의 독서관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문제지향적 독서관은 독서의 목적을 부귀영달이나 진리 그 자체의 추구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독서관을 가진 대표적 인물은 다산인데 그는 재주있는 인재를 버리고 현실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공부는 하지 말고, 실학에 마음을 두고 세상을 구했던 글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자학 영향을 받은 조선 선비들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책읽기였다.

그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소리 내어 읽고 또 읽는다.

같은 책을 수백번 읽는 것은 에사고 중요한 책은 1만 번이 넘게 읽는다.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암기가 되며 일상에 적용된다.

조선의 선비들은 왜 이렇게 읽고 또 읽었을까.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함이다.

내면의 성숙함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이른바 수기치인의 원리는 공자 이래 유학의 진면목이다.

여기에 주자학은 책읽기를 추가했다.

책읽기를 통해 유학 최고의 인간형인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자학의 주장은 당시로선 혁명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자학도 세월이 흘러 점차 과거시험용 암기식 지식으로 전락하는 폐단을 드러낸다.

"독서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데 있었지 지식의 획득에 있지 않았다.

선비들이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모두 독서에서 나왔다."

출처:​ 한국의 독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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