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 같은 사람은 [백이열전]을 1억 2천번이나 읽어, 당호를 아예 억만재라고 지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다독은 정독의 다른 말이 된다.
소는 여물을 대충 씹어 삼킨 뒤, 여러 차례 되새김질을 해서 완전히 소화시킨다.
우작牛嚼, 즉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서법은
한 번 읽어 전체 얼개를 파악한 후, 다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는 정독이다.
처음엔 잘 몰라도 반복해 읽는 과정에서 의미가 선명해진다.
인내심이 요구되나 보람은 크다.
고래는 바다 속에서 그 큰 입을 쩍 벌려서 물고기와 새우를 바닷물과 함께 삼켜 버린다.
입을 닫으면 바닷물은 이빨 사이로 빠져나가고 물고기와 새우는 체에 걸러져 뱃속으로 꿀꺽 들어간다.
소화를 시키고 말고 할 게 없다.
씹지도 않은 채 그대로 뱃속으로 직행한다. 그것도 부지런히 해야 그 큰 위장을 간신히 채운다.
경탄鯨呑, 즉 고래의 삼키기 독서법은 강렬한 탐구욕에 불타는 젊은이의 독서법이다.
그들은 고래가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어치우듯 폭넓은 지식을 갈구한다.
자칫 욕심만 사나운 수박 겉핥기가 되는 것이 문제다.
우작과 경탄은 근세 중국의 진목이 제시한 독서법이다.
씹지 않고 삼키기만 계속 하면 결국 소화불량에 걸린다.
되새김질만 하고 있으면 편협해지기 쉽다.
소의 되새김질과 고래의 한입에 삼키기는 서로 보완의 관계다.
책 읽기만 그렇겠는가? 주식 투자도 다를 게 없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마냥 궁리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없이 덮어놓고 저지르기만 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정독과 다독, 궁리와 결단의 줄타기가 바로인생이다.
출처 :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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