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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7년

<책속글귀> 휴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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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출발할 때의 인원 650명 중에 단 세 명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20개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되찾게 될까?
우리 자신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침식당하고 꺼져버렸을까?
돌아가는 우리는 더 풍요로워졌을까 아니면 더 가난해졌을까,
더 강해졌을까 아니면 더 공허해졌을까?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집의 문턱에서, 결과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판가름이 날 하나의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고 그것을 미리 상상하고 있었다.
혈관 속에서, 기진맥진한 피와 함께 아우슈비츠의 독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디에서 우리가 다시 살아나가기 위한 힘을,
버림받은 집집마다 텅 빈 둥지마다 그 주위로 아무도 없는 동안 저절로 자라나는 울타리와 장벽을 허물기 위한 힘을 끌어올린단 말인가?

조만간, 내일 당장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밖에 있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적들에 대항해서 싸움을 시작해야 할 텐데, 무슨 무기로, 무슨 기력으로, 무슨 의지로 한단 말인가?

1년간의 잔혹한 기억들에 짓눌려 우리는 공허해지고 무장해재되고 수백 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막 지나간 달들은 문명의 언저리를 서성이던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이 휴전으로, 무한한 자유로움의 막간으로, 하늘이 내려준 그러나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운명의 선물로 보였다.(....)




  

나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거나 일터에 있거나 푸른 전원에 가 있다.
그러니까 외관상으로는 긴장과 고통 없는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 속에 있다.
그럼에도 미묘하고도 깊은 불안감을, 닥쳐오는 위협에 대한 뚜렷한 느낌을 갖는다.

아닌 게 아니라 꿈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또는 돌연히 매번 다른 식으로 장면과 벽들과 사람들과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흐물흐물 해체된다.
그리고 불안감은 더욱 짙어지고 명확해진다.

모든 것은 이제 카오스로 변한다.
나만 홀로, 온통 잿빛의, 무감한 무 無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내가 다시 라거 안에 있고, 라거 밖에 있는 그 무엇도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가족과 꽃이 필 자연과 집은 짧은 휴가 또는 감각들의 속임수, 곧 꿈이었다.
이제 안의 꿈, 즉 꿈속의 꿈은 평화의 꿈은 끝이 난다.

차갑게 계속되는 바깥의 꿈속에서 나는 익히 알려진 어떤 목소리를 듣는다.
고압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짧고 낮은 한마디다.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오는 새벽의 명령 소리,

두려워하면서 기다리는 외국어 한마디, '브스타바치".

휴전 中   -프리모레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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