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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6년

<책속글귀>-연암을 읽는다 中 (by주부독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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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짓고 못짓고는 자기한테 달렸고, 글을 칭찬하고 비판하고는 남의 소관이다.
이는 꼭 이명 耳鳴이나 코골이와 같다.
한 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갑자기 '왜앵' 하고 귀가 울자 '와!'하고 좋아하면서 가만히 옆의 동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 이 소리 좀 들어봐! 내 귀에서 '왜앵' 하는 소리가 난다.
피리를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생황笙黃을 부는 것 같기도 한데 소리가 둥글둥글한 게 꼭 벌 같단다."
그 동무가 자기 귀를 갖다 대 보고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답답해 그만 소리를 지르며 남이 알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했다.



언젠가 어떤 시골 사람과 한 방에 잤는데 그는 드르렁드르렁 몹시 코를 골았다.
그 소리는 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휘파람을 부는 것 같기도 하고,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숨 쉬는 것 같기도 하고, 푸우 하고 입으로 불을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보글보글 솥이 끓는 것 같기도 하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숨을 들이쉴 때 톱질하는 소리 같고, 숨을 내쉴 땐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며 이렇게 말했따.
"나는 그런 적 없소이다!"




쯧쯧! 제 혼자 아는 게 있을 경우 남이 그걸 모르는 걸 걱정하고, 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을 경우 남이 그걸 먼저 깨닫는 걸 싫어한다.
어찌 코와 귀에만 이런 병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의 독자가 이 책을 하찮은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처럼 여겨 버리지 않는다면 저화공의 그림에서 흉악한 도적놈의 험상궃은 모습을 보게 되듯이 진실함을 볼 수 있으리니, 설사 이 명은 듣지 못하더라도 나의 코골이를 일깨워 준다면 그것이 아마도 글쓴이의 본의 本意일 것이다.





임백호任白湖가 말을 타려 하자 마부가 나서며 아뢨다네.
"나리, 취하셨나 봅니다. 목화木靴와갖신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
그러자 백호가 이렇게 꾸짖었지.
"길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목화를 신었다 할 것이요,

길 왼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갖신을 신었다고 할 테니, 내가 상관할 게 무어냐!"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 볼진댄, 천하에 발만큼 살피기 쉬운 것도 없지만, 그러나 그 보는 방향이 다르면 목화를 신었는지 갖신을 신었는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걸세.
그러므로 진정지견眞正之見은 실로 옳음과 그름의 '중'中에 있다 할 것이네.
가령 땀에서 이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미묘해 알기 어려운바, 옷과 살 사이에 본래 공간이 있어 어느 한쪽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한쪽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니, 누가 이 '중'中을 알겠나.
말똥구리는 제가 굴리는 말통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일세.

 

-연암을 읽는다 中      -박희병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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