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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6년

<책속글귀>-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中(by주부독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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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즐거움> 篇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아

눈 오는 아침이나 비 오는 저녁에 다정한 친구가 오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직접 글을 읽어 보니 나의 귀가 들어주었고, 내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써보니 나의 눈이 보아 주었다. 내 이처럼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았으니 다시 무슨 원망이 있을 것인가.



 

​가장 큰 즐거움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 일, 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법. 평생토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는지.





어리석은 덕무야!

가난해서 반 꿰미의 돈도 저축하지 못한 주제에 가난에 시달리는 온 천하 사람들을 위해 은택을 베풀 것을 생각하고, 노둔해서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주제에 천고(千古)의 온갖 경전과 사서(史書)를 읽으려 하니, 이는 오활한 자가 아니면 바로 어리것은 사람이다.
아. 덕무야! 나, 덕무야!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로다!




​책만은 버릴 수 없어

늠름한 외양의 한 장부(丈夫)가 나의 귀에다 대고 이르기를.
"세상을 한탄하는 마음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성내는 버릇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남들을 시기하는 마음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자만심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네 조급한 성질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윽고 그가,
"서책에 대한 욕심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뚫어지게 그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도대체 글을 즐겨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좋아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들 작성이십니까?"

이 말에 그 장부는 껄껄 웃으며 내 등을 어루만지며,
"너를 한번 시험해 본 것일 뿐이다."
라고 하였다.
 



슬픔과 독서

지극한 슬픔이 닥치게 되면 온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막하기만 해서 그저 한 뼘 땅이라도 있으면 뚫고 들어가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두 눈이 있어 글자를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극한 슬픔을 겪더라도 한 권의 책을 들고 내 슬픈 마음을 이로하며 조용히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절망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안정된다. 만일 내가 온갖 색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해도 서책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라면 장차 무슨 수로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내 가슴속에는

간사한 사람의 가슴속에는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쇠창이 한섬 들어 있고, 세속(世俗)에 물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더러운 때가 한 섬 들어 있고, 고아한 선비의 가슴속에는 맑은 얼음이 한섬 들어 있다.
강개한 선비의 가슴속은 분하고 비통해 온통 서글픈 ​가을빛이고, 기절(奇節)한 선비의 가슴속에는 여러 갈래로 뻗친 마음에 대나무와 돌들이 가득하다. 오직 대한(大人)만은 마음이 평탄하여 가슴속에 아무런 물건도 없다.

 

 




책을 읽어 좋은 점 네 가지

최근 들어 깨닫게 된 일이 있다.
일과(日課)로 정해 두고 책을 읽으면 네 가지 유익함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박식하고 정밀하게 된다거나 뜻을 지키고 재주를 키우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유익함이란 무엇인가?
약간 배가 고플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 글에 담긴 이치를 맛보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게 되니 이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요,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기운이 그 소리를 따라 몸속에 스며들면서 온몸이 활짝 퍼져 추위를 잊게 되니 이것이두 번째 유익함이요,

근심과 번뇌가 있을 때 책을 읽으면 내 눈은 글자에 빠져 들고 내 마음은 이치에 잠기게 되어 천만가지 온갖 상념이 일시에 사라지니 이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요,

기침앓이를 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창해져 막히는 바가 없게 되어 기침소​리가 돌연 멎게 되니 이것이 네 번째 유익함이다. 만약 춥거나 덥지도 않고 배고프거나 배부르지도 않으며, 마음은 더없이 화평하고 몸은 더없이 편안한데다. 등불은 환하고 서책은 가지런하며 책상은 깨끗이 닦여 있다면,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하물며 고원한 뜻과 빼어난 재주를 겸비한 건장한 젊은니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의 동지(同志)들이여, 분발하고 분발하지어다!

 


 
​번뇌가 닥쳐오거든

번뇌가 닥쳐올 때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았노라면 눈 속에 하나의 빛나는 세계가 펼쳐진다.
붉기도 하고 프르기도 하며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한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느새 사라지니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엔 뭉게뭉게 구름으로 피었다가,
또 어느 순간엔 넘실넘실 물결로 출렁이다가,
또 어느 순간엔 수놓인 비단 장식이 되었다가, 또 어느 순간엔 하늘하늘 꽃잎이 되기도 한다.
때론 반짝이는 구슬 같기도 하고 때론 뿌려 놓은 알곡 같기도 해서 순식간에 변화하고 번번이 새로운 게 된다. 이러다 보면 한때의 번민과 근심도 싹 사라지고 만다.



구름과 물고기를 보거든

구름을 보거든 깨끗하고도 막힘이 없는 까닭을 생각할 일이고,
물고기를 보거든 헤엄치며 깊이 잠겨 있는 까닭을 알 일이다.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中       -이덕무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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