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일상에서 평소 같으면 불행한 사태로 여길 만한 일들이 이 '별일 아니야!'로 인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기차를 놓칩니다. '별일 아니야!'는 저로 하여금 차분히 다음 기차를 놓칩니다. '별일 아니야!'는 저로 하여금 차분히 다음 기차를 기다리게끔 만들어주지요. 도대체 '나의' 기차라며 고집하는 이유가 됩니까? 승객이 모두 합해 350여명인데, '나의' 기차라고 하면 그 기차가 정말 내 소유물이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요?
'별일 아니야'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도록 저를 돕습니다.상황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찾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요.
만약 제가 카페 테라스에 앉아 물을 한잔마시고 있는데 누가 저를 비웃는다고 쳐보죠. '별일 아니야!'는 저로 하여금 장소를 옮기든가, 그 순간을 '긍정의 예스'를 실천해보는 기회로 삼도록 만들어줄 겁니다. 그냥 정신적 차원의 '예스'가 아니라, 실제로 모든 존재를 기꺼이 끌어안는 삶의 자세 말입니다.
말 그대로 '별일 아닌것'이죠. 시간이 갈수록 저는 삶을 짓누르는 것이 어떤 심각한 시련이나 장애가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일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몽테뉴가 한 말을 인용하자면, "사소한 폐해 더미" 말이지요.
'별일 아니야'는 인생을 살면서 저 자신을 내려놓는 가운데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좋아하는 이 보잘것 없는 문장의 기막힌 효능이지요.!
몇 해 전부터, 어림잡아 10여년은 됐을까요. 아침에 일어나면서 제가 버릇처럼 중얼대는 소리가 "아, 지긋지긋해!"입니다. 그만큼 사는게 힘겹고 피곤해서인 게죠.
이런 와중에 '별일 아니야'가 일종의 '절제된 삶의 자세'를 들고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생각을 덧붙이지 말자는 거죠. "별일 아니야!" 아직도 솔직히 지긋지긋하지만, 최근 언제부터인가 '별일 아니야'와 친숙해지다 보니 지긋지긋하다는 게 왠지 그렇게 지긋지긋하지만은 않더라고요!
스피노자와 서신을 주고 받았던 블리엔베르크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저 유명한 '장님의 사례'를 들어 다음과 같이 반박했지요. "그러나 장님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결핍되어 있지요. 정확히 말해 시력 말입니다.!"
이에 스피노자는 이런 요지의 반문을 합니다. "그럼 당신에게는 날개가 결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나요?" 만약 누군가 제게 그런 질문을 했다면 저는 지체 없이 대답했겠죠. "그건 아니죠 제게 날개가 결핍되었다고 말 할 순 없지요."
이로써 스피노자는 자신을 제외한 세상 모두가 날개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그것을 결핍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블리옌베르크에서 납득시킨 셈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원래 결핍된 것이 아님에도 내가 스스로를 타인과 비교하는 순간 결핍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지요.
단순함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수반되어야 가능합니다. 받아들이되, 무한한 호의로 받아들여야 하지요. 아들아, 오늘 너는 이 아빠에게 중요한 걸 가르쳐주었단다. 내가 명상을 하면서 살짝 엿보기만 하던 것을 너는 시원하게 드러내 보여주었어. 모든 걸 복잡하게 만드는 정신을 벗어나면 아무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장애는 문제가 아니란다. 내가 머리를 굴려 비교하고, 되돌아보고, 욕심부리면서 문제가 되는 것일 뿐, 부디 이 아빠가 우리 아들 오귀스탱의 말을 명심하고 항상 단순한 삶으로 회귀할 수 있기를..... 지금 이대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中 -알렉상드르 졸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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