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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부, 문명세계를 떠나지 말라)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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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문명세계를 떠나지 말라


 

 

중국은 문명한 것이 풍속이 되어 아무리 궁벽한 시골이나 먼 변두리 마을에 살더라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는 데 방해받을 일이 없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서 서울 문밖에서 몇십리만 떨어져도 태곳적처럼 원시사회인데 하물며 멀고 먼 시골이랴?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로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士)로서의 본색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고 있다만, 앞으로의 계획인즉 오직 서울로부터 10리 안에서만 살게 하겠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화(禍) 복(福)의 이치에 대해서는 옛날사람들도 오래도록 의심해왔다.

 

충(忠)과 효를 한다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을 하는 놈이라고 꼭 박복하지만도 않다.

 

그러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길이므로 군자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옛날부터 화를 당한 집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반드시 먼 곳으로 도망가 살면서도 더 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을 걱정하곤 했다.

 

그리하면 마침내 노루나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멀어진 무지렁이들이 될 뿐이다.

 

무릇 부귀하고 권세있는 집안은 눈썹을 태울 만큼 급박한 재난을 당해도 느긋하게 걱정없이 지내지만, 재난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 시골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는 몰락한 집안은 겉으로는 태평스러운 듯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항상 근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개 그늘진 벼랑 깊속한 골짜기에서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이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견문이란 실속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 때문에 한번 멀리 떠나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다.

 

진정으로 바라노니, 너희들은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달게 생활하지 말거라.

 

자손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도록 마음을 먹어야 한다.

 

천리(千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 가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1810년 초가울에 다산 동암에서 쓰다-지은이)

*햇볕을 볼 수가 없고: 문명의 혜택이 닿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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