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넘어져도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又示二子家誡
친척끼리 화목하게 지내려면
효(孝)와 제(弟)는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 된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하고 그 형제끼리 우애하는 사람쯤이야 세상에 많이 있어 그렇게 치켜세울 만한 행실이 될 수 없다.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형제의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여기고, 형제의 아들들이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를 자기 아버지처럼 여기고, 사촌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기를 친형제처럼 해서 집에 온 손님이 열흘 넘도록 묵으면서도 끝내 누가 누구의 아버지이고 누가 누구의 아들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해야만 겨우 집안의 기상을 떨칠 수 있다.
사람의 집에서 부귀가 한창 피어날 때는 골육간에 의지하고 서로 믿게 되어 원망할 일이 조금 있어도 마음으로 삭여 드러내지 않으므로 서로간에 화기(和氣)를 잃지 않을 수 있으나,
만약 매우 빈곤해지면 곡식 몇되 포목 몇자 가지고도 다툼이 일어나고 나쁜 말이 오고가서 서로 모욕하고 무시하다가 점점 더 격렬하게 다투게 되어 끝내는 원수지간이 된다.
이런 때 감동시킬 만한 도량 넓은 남자가 없다면, 점잖고 지혜로운 부인이 산이나 늪같이 넓은 도량을 활짝 열어 구름을 헤치고 나온 햇빛이 비치듯 순순히 받아들여
부드럽게 되기를 어린아이처럼, 속없는 사람처럼, 뼈없는 벌레처럼, 갈천씨(葛千氏)*처럼, 참선하는 중처럼 해야 한다.
저 사람이 나에게 돌을 던지면 아름다운 옥(玉)으로 갚아주고, 칼이나 창을 들이대도 맛있는 술로 대접해주면, 눈을 흘리고 화를 내며 다투고 소란을 피워 집안을 뒤엎은 뒤에야 끝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이러한 뜻을 잘 알아 날마다[소학(小學)] 외편에 있는 [가언(嘉言)]이나 [선행(善行)]을 착실히 본받고 부지런히 잘지켜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끈기있게 그러한 행동을 하면 감동이 일어 기뻐하는 마음이 저절로 이루어져 화목하게 될 것이다.
설혹 불행히도 화목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친척이나 고을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히 공정한 논평이 나오게 마련이라 잘잘못을 함께 싸잡아 되놈이나 오랑캐같이 야만적인 족속이라는 말을 듣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아 가문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갈천씨: 중국 상고시대의 제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천하를 잘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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