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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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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귀양길에 올라서

 


 

세상을 구했던 책을 읽어라

내가 앞서 누누이 말했듯이 청족(淸族)은 비록 독서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저절로 존중받을 수 있으나 폐족(廢族)이 되어 세련된 교양이 없으면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고 세상에서 얕납아보는 것도 서글픈 일일진대 하물며 지금 너희들은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고 얕잡아보고 있으니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다.

 

너희들이 끝끝내 배우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포기해보린다면 내가 해놓은 저술과 간추려놓은 것들을 앞으로 누가 모아서 책으로 엮고 교정하며 정리하겠느냐?

 

이 일을 못한다면 내 책은 더이상 전해질 수 없을 것이며, 내 책이 후세에 전해지지 않는다면 후세사람들은 단지 사헌부(司憲府)의 계문(啓文)과 옥안(獄案)만 믿고서 나를 평가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치급받겠느냐? 아무쪼록 너희들은 이런 점까지 생각해 다시 분발하여 공부해서 내가 이어온 실낱같은 우리 집안의 글하는 전통을 더욱 키우고 번창하게 해보아라.

 

그러면 세상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될 것은 물론 아무리 대대로 벼슬 높은 집안이라 하더라도 우리 집안의 청귀(淸貴 )와는 감히 견줄 수 없을 것이니, 무엇이 괴롭다고 이런 일을 버리고 도모하지 않느냐?

 

 

 

요즈음 한두 젊은이들이 원(元) 명(明) 때의 경조부박하고 망령된 사람들이 가난과 괴로움을 극한적으로 표현한 말들을 모방해 절구(節句)나 단율(短律)을 만들어 당대의 문장인 것처럼 자부하며 거만하게 남의 글이나 욕하고 고전적인 글들을 깎아내리는 것은 내가 보기에 불쌍하기 짝이 없다.

 

반드시 처음에는 경학(經學)공부를 하여 밑바탕을 다진 후에 옛날의 역사책을 섭렵하여 엣 정치의 득실과 잘 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보아야 한다.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實學)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 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가롭게 생각이 떠올라 그냥 운율이 나오고 저절로 시가 될 때 천지자연의 음향이 제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경지일 것이다. 나보고 너무 현실성 없는 이야기만 한다고 하지 말거라.

최근 수십년 이래로 한가지 괴이한 논의가 있어 우리 문학을 아주 배척하고 있다. 여러가지 우리나라의 옛 문헌이나 문집에는 눈도 주지 않으려 하니 이야말로 병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사대부 자제들이 우리나라의 옛일을 알지 못하고 선배들이 의논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 비록 그 학문이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해도 그저 엉터리가 될 뿐이다.

 

다만 시집 같은 것이야 서둘러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신하가 임금께 올린 상소문, 비문, 옛 사람들끼리 주고받은 서간문 등은 모름지기 읽어 안목을 넓혀야 한다. 또 [아주잡록(鵝洲錄)] [반지만록(盤池漫錄)] 청야잠집(靑野謾輯) 등의 책은 반드시 널리 찾아서 두루두루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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