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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제2부 율기(律己)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 갈려 돌아가는 날에는 반드시 기부(記付)가 있어야 한다. 기부의 액수는 마땅히 미리 준비해야 한다. ​ ​ 관부에 전해 내려오는 돈과 곡식 등 여러 재물은 통틀어 장부에 기록되는데, 이를 중기(重記)라고 한다. 갈려 돌아갈 때에는 쓰고 남은 것을 대략 중기에 기재하는데, 이를 기부하고 한다. 평상시에 유의하지 않으면 급할 때 갑자기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초하루 보름의 회계일마다 관부에서 쓰는 여러 물품을 약간 남겨두었다가 갑작스러운 교체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치현결]에 말하고 있다. "관아 주방에서 쓰이는 것은 이미 모두 달로 쪼개어 배당하였으니 당겨쓰지만 않으면 걱정할 것은 없다. 나머지의 돈과 곡식은 항..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제2부 율기(律己)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 개인적인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사람들이 능히 할 수 있지만, 공적인 물건과 돈을 절약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적인 물건을 자기 물건처럼 아껴야 현명한 수령이다. ​ ​ 고을마다 반드시 공용의 재정이 있어 여러 창고가 설립되어 있다. 처음에는 공용이었지만, 설립한 지 오래되면서 점차 사용으로 지출되어 그릇된 관례가 겹겹이 생기고 절제 없이 낭비하게 되었다. 본래 공용이었기 때문에 수령은 끝내 살피지 못하고, 창고를 감독하는 아전과 종은 갖가지로 속여 오로지 몰래 훔쳐 먹으려고만 한다. 창고가 비게 되면 또 거듭 거두어들이는 바, 이는 여러 도의 공통된 폐단이다. ​ 수령은 한 고을을 주재하는 사람이니 한 고을의..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제2부 율기(律己)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 ​ 무릇 아전과 종이 바치는 물건으로 그 값을 치르지 않은 것은 마땅히 더욱 절약해야 한다. ​ ​ 이득준(李得駿)이 강진현감(康津縣監)으로 있을 때 안채 앞뒤에 채소밭을 크게 가꾸어 안채의 노비들을 시켜 거름 주고 김매게 하였다. 그 채소밭이 기름져 채소가 잘 자라 사시장철 채소가 끊이지 않아 원노(園奴)가 바쳐야 할 것을 모두 감해주었고, 또 먹고도 남아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었다. 지금가지도 그 은혜를 칭송하는 것이 전해져 미담이 되었다. ​ 정선은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현령이 있었는데 매우 청렴하고 아주 꼿꼿하였다. 서울에서 공적인 일로 편지가 왔는데, 관용(官用)의 촛불을 커고 봉한 편지를 뜯어..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2부 율기(律己)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 ​ 제사와 손님맞이는 비록 사사로운 일이 속하지만, 마땅히 일정한 법도가 있어야 한다. 쇠잔한 작은 고을은 법도보다 줄여야 한다. ​ ​ ​ 사마온공(司馬溫公)은 이렇게 말하였다. "선친께서는 여러 고을 판관을 역임하면서 손님이 오면 늘 술을 대접했는데, 세 순배 혹은 다섯 순배를 하되 일곱 순배를 넘는 일이 없었다. 술은 저자에서 사왔고, 과일은 배. 밤. 대추. 감뿐이었고, 안주는 건포. 젓. 나물국뿐이었으며, 그릇은 자기(磁器)와 칠기(漆器)를 사용하였다. 당시의 사대부는 모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르다고 여기지 않았다. 모임은 잦았으되 예는 은근하였고, 물건은 박하였으나 정은 두터웠다." ​ ..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2부 율기(律己)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 ​ ​ 의복과 음식은 검소한 것을 법도로 삼아야 한다. 조금만 법도를 넘어도 씀씀이에 절도가 없어져 버린다. ​ ​ 의복은 성글고 검소한 것을 입도록 힘써야 한다. 아침저녁의 식사는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장 한 종지 외에 네 접시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네 접시란 구운 고기 한 접시, 마른 고기 한 접시, 절인 나물 한 접시, 젓갈 한 접시이니, 이보다 더해서는 안 된다. ​ 요즈음 수령들은 온갖 일에는 다 체모를 잃으면서도, 오직 음식만큼은 망령되이 스스로를 존대하여 옛법을 다른다고 한다. 크고 작은 두 상에 홍백(紅白)의 밥을 함께 차려놓고, 안채와 바깥사랑의 두 군데 반찬에는 ..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2부 율기(律己) 6조 5. 씀씀이를 절약함(節用) ​ 수령 노릇을 잘하려는 자는 반드시 자애로워야 하고, 자애로워지려는 자는 반드시 청렴해야 하고, 청렴하려는 자는 반드시 검약해야 한다.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수령의 으뜸가는 임무이다. ​ ​ ​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자는 겨우 한 고을을 얻기만 하면 교만 방자하고 사치해져 절제하는 바 없이 손닿는 대로 함부로 써버리고, 부채(負債)가 많아지면 반드시 탐욕스럽게 된다. 탐욕을 채우려면 아전과 더불어 일을 꾸미게 되고, 아전과 더불어 일을 꾸미면 그 이득을 나누어야 되고, 그 이득을 나누게 되면 백성의 고혈이 마르게 된다. 그러므로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일이다. ..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 ​제2부 율기(律己) 6조 ​2. 청렴한 마음[淸心] ​ 수령이 청렴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그를 도덕적으로 지목하여 마을을 지날 때에 더럽다고 욕하는 소리가 높을 것이니, 이 역시 수치스러운 일이다. ​ 고려의 나득황(羅得璜)이 백성들의 살을 깎아내듯 세금을 긁어 모으면서 최항(崔沆)에게 아첨하여 제주 부사(濟州副使)가 되었다. 송소(宋佋)가 제주 수령을 지내다가 횡령죄로 면직되고 나득황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제주가 전에는 작은 도적을 겪었는데 이제 큰 도적을 만났구나"라고 하였다. 이기(李墍)의 [송와잡설松窩雜設]에 이르기를, "국초(國初)에 함경도는 야인(野人)과 접해 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수령을 모두 무관에서 뽑아 보내는 것이 관례였으며, 게다가 조정으로..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 제2부 율기(律己) 6조 ​2. 청렴한 마음[淸心] ​ 예로부터 지혜가 깊은 선비는 청렴을 교훈으로 삼고, 탐욕을 경계했다. ​ 명나라의 풍유룡(馮猶龍)은 "천하의 한없이 못난 짓은 모두 돈을 버리지 못하는 데 따라 일어나고, 천하의 끝없이 좋은 일은 모두 돈을 버리는데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정선(鄭瑄)은 이렇게 말하였다. "얻기를 탐내는 자가 만족을 모르는 것은 모두가 사치를 좋아하는 일념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편안하고 담담하여 족한 것을 알면, 세상의 재물을 구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청풍명월(淸風明月)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며, 대울타리 띠집은 돈 쓸 일이 없으며, 책을 읽고 도를 이야기하는 데 돈이 요구되지 않으며, 몸을 깨끗이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 ​ 제2부 율기(律己) 6조 ​2. 청렴한 마음[淸心] ​ ​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 공자는 "인자(仁者)는 인(仁)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知者)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고 말했는데, 나는 "청렴한 자는 청렴함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는 청렴함을 이롭게 여긴다"고 하겠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들은 재물을 크게 욕심내지만, 재물보다 더욱 큰 것을 욕심내는 경우에는 재물을 버리고 취하지 않기도 한다. 비록 재물을 얻는 데 뜻을 둔다 하더라도 당연히 청렴한 관리가 되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늘 보면 지체와 문벌이 화려하고 재주와 덕망이 가득한 사람이 수백 꾸러미의 돈에 빠..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 ​ 제2부 율기(律己) 6조 ​2. 청렴한 마음[淸心] ​ 청렴은 수령의 본래의 직무로 모든 선(善)의 원천이며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노릇을 잘할 수 있는 자는 없다. ​ 우리 조선조에 청백리(淸白吏)로 뽑힌 사람이 모두 110명인데, 태조 이후에 45명, 중종 이후에 37명, 인조 이후에 28명이었다. 경종 이후로는 드디어 이렇게 뽑는 것조차 끊어지고,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은 더욱 곤궁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한심하지 않는가! 400여 년 동안에 예복을 입고 조정에서 벼슬한 자가 거의 몇천 명에서 만 명에 이르는데, 그중에서 청백리로 뽑힌 사람이 겨우 이 정도니 사대부의 수치가 아니겠는가? ​ [상산록]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