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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책속글귀>한국의 독서문화사 中 #한국의 독서문화사 어릴 때부터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던 세종대왕의 독서법은 이른바'백독백습(百讀百習)'으로 이른바 100번 읽고 100번 쓰는 것이었다. 이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의 실사구시라고 하겠다. 아버지 태종이 주는 책이면 [사서삼경]을 비롯해서 어떤 책이든 밤을 세워가며 읽으면서 한 번 읽고, 한 번 쓸 때마다 '바를 정(正)' 자를 표시하면서 독서를 하였다. 그래서 태종이 시험삼아 물어보는 것에 대해 항상 능숙하게 답변을 해서 놀라게 했다. 한국의 독서문화사 中 -남태우 저 더보기
<책속글-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인재는 세상 모든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보배"라고 보았던 상께서는 인재의 천거를 요구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재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묻곤 하셨다. 모름지기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에 인물이 있기 때문이요,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만큼 유능한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 당신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임금들은 인재를 들여서 쓰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인재를 구별해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그 방법이란 다름이 아니라 인재를 기르고 가려내어 적소에 배치하는 도 道를 말한다. 상께서 1447년(세종29)에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한 것처럼,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들여 쓰고 내.. 더보기
<책속글-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세종 시대를 떠받친 정치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황희일 것이다. 그는 세종8년(1426년)에 우의정에 제수된 이래 1449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정승 자리에 있었고, 1432년부터 1449년에야 비로소 영의정으로 치사할 것을 인정할 정도였다. 세종 재위 31년 중에 8년을 제외한 23년 동안 정승직을 수행했으니, 세종이 남긴 업적 중에 절반은 황희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452년에 황희가 죽자, 문종은 그를 세종의 묘정에 배향하는 교서를 내렸는데, 여기에 적힌 황희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 큰일과 큰 문제를 결정하는 마당에서는 의심 나는 것을 귀신처럼 풀어줬고, 좋은 계책과 좋은 의견을 제기하여 임금의 결함을 미리 메워줬다. 임금에게 과오가 없도록 노력했으며, 백성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