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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세종의 적솔력 中 -박현모 저 문어농부(문어농부(問於農夫)) 현장에 답이 있다. '이날 행차에 다만 그날 근무하는 호위군관 한 명만 거느리고, 임금이 쓰는 홍양산과 부채를 쓰지 않았다. 벼가 잘되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다." 재위 7년 7월 1일 문어농부問於農夫란 '농부에게 물었다'라는 뜻이다. 재위 7년째가 되는 1425년은 세종에게 가장 어려운 고비였다. "20년 이래로 이와 같은 가뭄은 보지 못했다." 라는 세종의 말이 보여주듯이 극심한 가뭄이 엄습했다. 가뭄을 걱정한 나머지 열흘 동안 꼬박 앉아서 날이 샐 때까지 기도하던 세종은 급기야 몸져눕고 말았다. 50여일의 와병(臥病) 중 열흘간은 조정에서 장례를 준비해야 할 절도로 위태로웠다. 7/7/28, 7/윤7/19, 7/윤7/24) 이런 와.. 더보기
<책속글- 세종, 실록밖으로 행차하다> 세종이 사망했을 때, 사관은 "잠시도 게으르지 않았던 임금"이었다고 평했다. 즉, 그는 즉위한 이후 "매일 사경四更(새벽1~3시)이 되면 옷을 입고, 날이 환하게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보고, 다음에는 윤대(신하들이 임금에게 정치에 관한 의견을 차례로 아뢰던 일)를 행하고, 경연에 나아가기를 한 번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는 것이다. ​ 특이한 점이라면 어려서부터 '책을 놓지 않았다手不釋卷' 는 점을 들 수 있다. 세종은 실제로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가 형 양녕을 제치고 왕위 계승권자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도 '공부하기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 그런데 내가 보기에 세종에게 독서는 일종의 피난처, 즉 '물러가 쉴곳'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비린내 나는 권력 쟁탈을 지켜보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