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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권장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6부 호전(戶典) 6조 ​ 6. 농사 권장[勸農] ​ 농사는 소로 짓는 것이니 진실로 농사를 권장하려면 마땅히 도살을 경계하고 목축을 장려해야 한다. ​ ​ 박제가(朴劑家)의 [북학의(北學義)]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중국의 풍속에 소는 코뚜레를 하지 않고, 다만 성질이 사나운 남방의 물소만 코뚜레를 한다. 간혹 회령이나 경원, 중강, 의주 등의 서북개시(西北開市)를 통해 들어온 소가 있는데, 우리나라 토종 소는 콧마루가 낮아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처음 들어왔을 대에는 소의 뿔이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못하나 휘어서 바르게 할 수 있다. 털빛이 온통 푸른 소가 있는데,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소를 항상 목욕시키고 손질해주는데, 우리나라 소가 죽..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6부 호전(戶典) 6조 ​ 6. 농사 권장[勸農] ​ ​ 농기구와 베 짜는 기계를 만들어 백성들이 용구를 편리하게 쓸 수 있게 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 수령 된 자가 힘쓸 바이다. ​ ​ 후한의 최식(崔寔)이 오원태수(五原太守)가 되었는데, 그 지방의 토질이 삼과 모시에 적합한데도 백성들이 길쌈할 줄을 모르고, 가는 풀을 쌓아두고 그 속에 누워 있다가 관리를 보면 풀을 걸치고 나오곤 했다.최식은 부임하자 저축미를 처분하여 실 뽑고 베 짜는 기구를 만들어 가르치니, 백성들이 추위의 고통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유산필담(酉山筆談)]에 말했다. "서광계(徐光啓)의 [농기도보(農器圖譜)에 열거된 농기구들은 모두 질박하여 만들기 쉽고, 별도로 톱니바퀴..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6부 호전(戶典) 6조 6. 농사 권장[勸農] ​ 농사는 식생활의 근본이고 양잠은 의생활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뽕나무 심기를 권장하는 것은 수령의 중요한 임무이다. ​ 내가 서울의 명례방(明禮放)에 있을 때 집에 뽕나무 20여 그루가 있었다. 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직접 잔가지를 잘라주니 수년 내에 무성하게 커져서 비록 서울 안에 있었지만 집사람이 해마다 비단을 짤 수 있었다. 이원익(李元翼)이 안주목사로 있을 때 평안도 지방에 양잠이 성했으나 안주에만 유독 뽕나무가 없었다. 그 이유는 토질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그가 각 면(面)에서 지시하여 집집마다 뽕나무씨를 심게 하니 몇해 안 가서 뽕나무가 줄을 지어 숲을 이루었다. ​ ​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6부 호전(戶典) 6조 ​ 6. 농사 권장[勸農] ​ ​ 농사를 권장하는 요체는 세를 덜어주고 가볍게 함으로써 그 근본을 배양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하면 토지가 개간되고 넓혀진다. 송나라의 진정(陳靖)이 권농사(勸農使)가 되었다. 이에 앞서 그가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신이 평소에 사방으로 사신 나가 백성들의 사정을 깊이 살펴보았는데, 보이느니 황폐한 땅이고 기름진 땅도 그대로 묵히고 있었습니다. 이런 곳 모두 여러 차례 조서를 내려 백성들이 자기의 생업에 복귀하도록 허락하고, 붓를 경감해주며 그 납입 기한도 넉넉히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방 말단에서는 백성들을 괴롭힘이 더욱 심했습니다. 한 집이 귀농(歸農)하면 고발 때문에 아침에 한 치의 땅을 .. 더보기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 ​제6부 호전(戶典) 6조 ​ 6. 농사 권장[勸農] ​ ​ 옛날의 현명한 수령은 부지런히 농사를 권장하는 것을 자기의 명성과 공적으로 삼았으니, 농사를 권장하는 것은 수령의 으뜸가는 책무이다. 수나라 공손경무(公孫景茂)가 도주자사(道州刺史)로 있을 때 자기의 녹봉을 전부 털어 송아지. 닭. 돼지를 사서 생계를 꾸려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혼자 말을 타고 순찰하기를 좋아해서 집집마다 방문하여 백성의 살림살이를 두루 살펴보고 잘 꾸려가는 자가 있으면 사람들이 모일 때 표창을 하여 알리고, 잘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훈계하여 가르쳤다. 이 때문에 남자들은 서로 농사일을 돕고 여자들은 길쌈을 서로 도와서 수백 가구나 되는 큰 마을이 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