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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6년

<책속글귀>-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中(by주부독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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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선비의 말>篇


책밖에 모르는 바보

남산 아래 퍽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말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하고,
천성이 게으르며 성격마저 고루하니 꽉 막혔을 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계(生計)에 대한 일이라면 도통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해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책 읽는 일만을 즐겨, 책을 읽기만 하면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책만 읽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옛 책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기거하는 방도 무척 작았다.
하지만 동쪽과 서쪽과 남쪽에 각각 창(窓)이 있어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직 보지 못했던 책을 구해 읽게 되면, 그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띠곤 했다.
집 사람들은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뻐하면 필시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특히 두보(杜甫)의 오언 율시(五言律時)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시를 읊느라 앓는 사람처럼 웅얼거리기를 예사로 하였고, 시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혹 심오한 뜻을 깨치게 되면 그만 기뻐서 벌떡 일어나 방 안팎을 서성이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치 까마귀가 우짖는 소리를 내곤 했다. 어떨 땐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멀거니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였따. 사람들이 자길르 보고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 해도 그냥 씩 웃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의 전기(傳記)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내 붓을 들어 그의 일을 써서 '책밖에 모르는 바보 이야기'를 짓는다.  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다.



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中          -이덕무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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