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의 고백, 증발 26년 中
부족함이 없었던 어린 시절, 빛나는 학창시절, 출발부터 좋았던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외아들로 태어나 식구라고는 달랑 셋뿐이었지만 집은 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즐거웠던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퇴근해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학교로 날 데리러 오던 어머니는 언제나 슬프고 무언가를 추억하는 표정이었다.
가끔 어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겁이 났다. 어쩌면 어머니가 동경하던 좀 더 신나는 인생을 찾아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날씨가 화창하다. 눈을 뜬다. 나이 든 남자가 몸을 굽혀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가 밥과 된장국, 생선구이를 내온다. 두꺼운 스웨터 차림의 그가 밥을 먹는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분명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을 이전에도 발견했을 것이다. 다시 기운이 난다. 그러나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 남자는 내게 지폐 몇 장을 쥐여주고는 내가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바라본다.
내 외투, 남자가 깨끗이 닦아 놓은 모자와 신발을 착용하고 도쿄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더 이상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 자신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다.
새벽이다. 마치 전에 이 길을 와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마치 사후의 목소리에 이끌려온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어느 창고 건물 쪽으로 간다.
무뚝뚝한 청년들이 트럭에 올라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나는 공사판의 일용직 노동자가 되었다. 몇 달 전에 청사진을 그려본 것과 비슷한 인생이다.
인간증발 -레나 모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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