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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노트,독서HAZA365>/독서노트-2018년

내 인생의 글쓰기 -김용택,김원우,도종환,서정오.성석제,신달자,안도현,안정효,우애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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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은 시작되었고, 나는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썼다. 그 길고도 긴 인생의 길이 책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내 책이 다른 책들 속에 섞여 있을 때 나는 신기하다. 내가 처음 글을 써보려고 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책을 읽다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많은 책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저 책을 쓴 것이 사람들이지. 그렇다면 나도...' 그리고 나는 글을 써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용택







한심한 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 하나는 있었으니 그것은 책 읽기였다. 내성적인 성격에다 별다른 재주도 없었으니 소일거리 삼아 그쪽으로 자연히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 책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서 누가 선물로라도 집어주는 법도 없었고, 또 사 볼 형편도 못 돼서 친구들이나 이웃집들로부터 빌려보았다. 아무리 책이 귀했다 해도 막상 눈여겨보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 책이었다. 궁하면 통하고, 지성이면 감천이라 말 그대로 그쪽으로 눈이 뜨이자 읽을거리가 너무 많아 탈이었다. 책만 잡으면 곧장 그 속에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김원우








글을 쓰려는 이들 중에는 의외로 삶에서 받은 상처를 오래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해와 사랑의 부족, 그 결핍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 내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소외의 기억, 소통의 부재 그런 것이 글을 쓰게 하는 원인인 경우가 있다. 이런 상처와 소외와 고통이 도리어 재산이 되는 분야는 많지 않다.

그러나 문학의 토양은 상처다. 상처가 스승이다. 결핍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고 내면 깊숙한 아픔이 시의 밭이다. 그 아픈 기억들을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장르가 문학인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자기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료 행위인 것이다.

슬픔이든 분노이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적어가는 과정은 감정을 객관화하는 과정이다. 자기감정이지만 글로 옮겨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은 여과되고 해소되며 창조적으로 승화한다. 감정의 덩어리 자체는 아직 글이 아니다. 그러나 감정이 여과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적 정서로 변화하고 포에지는 포엠으로 변한다.

격렬하거나 뜨겁거나 휘몰아치던 감정이 차분해지고 그 감정의 덩어리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 뒤에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간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훈련을 통해 '감정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나를 울게 하던 감정이 다른 사람을 울리는 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울림인 것이다.

이른바 남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가 글 쓰는 사람을 존중하는 이유도 그들이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종환











무엇보다도 이제는 누구나 작가가 되어야 한다. 입 가진 사람이 누구나 말을 하듯이, 글 배운 사람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문단'이라는 걸 만들어 둘레에 높은 울타리를 쳐 두고, 무슨 신춘문예니 추천제도니 하는 시험을 봐서 심사위원 눈에 들어야 그 안에 들어갈 자격을 주던 시대는 이제 옛날로 흘려보내야 한다.

말하는 데 자격증이 필요 없는 것처럼 글 쓰는 데 면허증 따위는 필요치 않다. 아니, 도대체 내가 글 쓰겠다는 데 누가 허락을 하고 말고 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작가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오늘 일터에서 느낀 즐거움이나 억울함을 내 나름대로 글로 써 본다면, 이미 당신은 훌륭한 작가다.

비 오는 일요일 아침 문득 생각난 옛 동무의 이름 석자 가만히 불러보고 마음에 묻어 둔 말 네댓 줄 끼적여 본다면, 이미 당신은 훌륭한 시인이다. 어릴 적 할머니한테서 들은 옛이야기 한자리 떠돌려 여섯 살배기 아이에게 나긋나긋 들려준다면, 이미 당신은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달리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이제는 정말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 농사꾼과 행상과 어부와 노동자가 글을 써야 한다. 공연히 어려운 말로 젠체하는 글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절로 터져 나오는 내 생각과 내 느낌과 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글을 써야 한다. 그리하여 글이 온 세상에 강물처럼 흘러넘쳐야 한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글을 읽어야 한다. 초등학생이 쓴 글을 국회의원이 읽고, 농사꾼이 쓴 글을 대학교수가 읽고, 염전 노동자가 쓴 글을 장관과 법관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감동하며 배워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바꾸어 말해도 물론 마찬가지다.

-서정오






나는 문학이 가지고 있는 본질, 보편의 감동에 닿았던 것이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감정, 감각에 나는 당황했다. 왜 머리카락이 곤두설까. 왜 눈꼬리가 시큰할까. 왜 침이 마르고 혀끝이 아릿할까. 나는 일어나 앉아서 다시 그 동시를 읽었다.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이가 두 자리 숫자인 남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눈물이, 나는 얼른 동시집을 책장에 꽂고는 밖으로 나왔다.

-성석제







사람들은 말했다. 너의 불행이 너의 시를 존재케 한다고,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어찌 시가 문학이 인간의 불행을 담보로 주어지는 것이던가. 아니다 아니다. 나는 하느님께 대들었다. 적어도 신은 인간에게 그런 보상의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외치며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엄격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지상에서 내가 짚어야 할 지팡이는 내 의지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나와 약속했다. 결코 초라하거나 비겁하지 마라. 일어서라 일어서라 결코 포기하지 마라. 내 인생에 고개를 숙이기엔, 내 삶에 절망하기엔 나는 그때 너무 눈 시리도록 젊었다.

그래서 나는 싸웠다. 코피를 터트리며 기어가는 삶을 살았지만 시를 쓰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며 세상을 사랑하였다. 그랬다. 세상을 사랑하였다. 그때 세상을 향해 원망만 하거나 경멸하기만 했다면 나는 더 지치고 쓰러졌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검은 고통의 내 삶을 예쁘게 껴안았던 것이다. 못난 생을 버리지 않고 껴안은 그 보답이었을까.

하느님은 충분히 내게 선물을 주셨다. 겸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은혜 그리고 오늘에 있어서는 마음의 평화와 담담히 홀로 살아가는 법을, 그리고 격정보다는 따뜻한 사랑을 지니는 가슴을 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도전할 수 있는 시가 내게 있지 않은가!

-신달자







시를 읽고 쓰는 것, 그것은 이 세상하고 연애하는 일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연애시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애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어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가슴으로만 하는 연애, 손끝으로만 하는 연애도 나는 경계한다.

가슴은 뜨겁지만 쉽게 식을 위험이 있고, 손끝은 가벼운 기술로 사랑을 좌우할 수도 있다. 가슴과 손끝으로 함께 하는 연애, 비록 욕심이라 할지라도 내 시는 그런 과정 속에서 태어나기를 꿈꾼다....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외로움의 거름을 먹지 않고 큰 문학이 있다면 그 뿌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안도현







열정적인 책읽기의 욕구가 무한히 왕성하던 시절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타인이 지도하는 계획에 따른 독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을 위한 혼자만의 독서방법이 필요하라라는 판단이섰고, 그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겼다 .방법은 간단했다.

세계명작은 그만큼 읽었으면 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라, 남들이 다 읽는 고전소살 따위는 이제 그만 두고, 내가 태어난 해인 1941년 이후에 발표된 현대소설들만 읽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랄 읽기는 하면서도, 눈에 띄는 새롭고 흥미로운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모조리 읽어치는 습성은 버리지 않았따.

-안정효







오랜 세월 동안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친지,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통과 슬픔이 평안과 기쁨보다 더 많이 삶에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강한 힘으로 휘두르는가... 우리는 운명에 맞서 싸울 아무 힘도 지니지 못한 무력한 존재인가..의문은 지금도 내 곁에 머무르고 있다.

아마 나는 그 의문에 대답해 보려고 절망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사랑과 삶의 의미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접목시켜 독특한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은 카운슬링 에세이집들을 출간한 것은 소설책을 내는 것처럼 보람 있는 일이었다.

글 쓰는 일이 제일 즐겁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작가가 글 쓰는 일이 고통스럽제 않고 즐거우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위로를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야말로 큰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내가 쓴 글이 책이 되어 사람들의 머리맡에 높여이을 생각을 하면 마음속에 등불이 켜진 듯한 따뜻한 느낌이 든다....

-우애령


내 인생의 글쓰기   -김용택,김원우,도종환,서정오.성석제,신달자,안도현,안정효,우애령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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