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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부, 시는 어떻게 써야 하나)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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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2부

두 아들에게 주는 가훈

 

시는 어떻게 써야 하나

 

又示二子家誡


번웅(樊翁:채제공 蔡濟恭)은 시에 있어서 시인의 기상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유성의(劉誠意)*의 시를 읽을 때마다 기상의 약한 듯 처량하고 괴로운 내용이 있었고, 소릉(少陵)*의 시에는 번화하고 부귀한 시어가 많았지만 끝내 뇌양(耒陽)*에서 곤궁하게 살다가 죽었으니, 꼭 그렇게 시와 기상이 관계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요즘 내가 상자 속에 넣어둔 옛날 시고(詩篙)들을 점검해보니 난리를 만나기 전,

 

즉 한창 벼슬을 하여 문학하는 선비들이 들고 나던 한림원(翰林院)을 훨훨 날며 지내던 때 지은 시편들은 대개가 처량하고 괴로우며 우울한 내용이었고,

 

장기에 유배 갔던 때는 더욱 우울하고 슬픈 내용이었는데,

 

강진으로 옮겨온 이후의 작품들은 활달하고 확 트인 시어들이 많았다.

 

생각건대, 재난이 앞길에 놓여 있으므로 그렇게 활달한 기상을 갖지 못했는데, 재난을 당한 후에는 아마 근심이 없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선배인 번옹의 주장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되겠구나.

그러나 기상을 화려하게만 하려고 해서는 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시에는 반드시 정신과 기맥(氣脈)이 있어야 한다.

 

시가 산만하고 쓸쓸하기만 하여 잘 묶이고 짜인 묘미가 없으면 그 사람의 운명이 곤궁하거나 현달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수명조차 길지 못할 것이다. 이 점은 내가 몇 차례 증험한 바다.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3백편의 시는 모두가 현인이나 성인이 실의에 빠져 세상일을 근심하던 때 지은 것이므로 감개(感慨)한 내용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미묘하고 완곡하게 그런 뜻을 나타내야지, 얄팍하게 보이도록 토로해버려서는 안된다.

일곱자(字)로 지은 옛 시에는 율조를 지닌 것이 많은데, 대개 평성(平聲) 입성(入聲) 상성(上聲)의 사성을 반드시 고루 섞어서 시를 지었다.

 

거성으로 운자를 달면 평성으로 잇고 평성으로 운자를 달면 입성으로 이었는데, 입성으로 시작한 시는 전혀 없다.

 

우리나라 사람은 오히려 이런 원리를 알지 못하고, 만약 평성으로 운을 단다면 대구(對句)에서는 반드시 측성(仄聲)을 쓴다.

 

평성으로 평성을 이은 시는 없다. 또 [장안고의(長安古意)]* 같은 시는 글자마다 운율을 맞춰 매 4구(句)마다 따로 한장(章)이 되게 하여 마치 절구(絶句)같다. 이게 바로 연환(連環) 율법(律法)이라는 거다. 시 전체에 단 한가지 운(韻)만 사용하는 것은 시 짓는 법에 없다.

침울(沈鬱) 돈좌(頓挫) 연영(淵永) 한원(翰遠) 창경(蒼勁) 기굴(奇屈)이라는 열두자는 시인이 종지(宗旨)로 삼아야 할 것이고, 욕려(縟麗)와 농연(濃妍) 등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1808년 여름 윤달에 다산에서 쓰다-지은이)

 

*유성의: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이며 훈신(勳臣)인 유기(劉基), 성의백(誠意栢)을 지냈으므로 '유성의'라 부른다.

*소릉: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호.

*뇌양: 중국 호남성 형양(衡陽)에 있는 지명.

 

*[장안고의]: 고의(古意)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7언가행(七言歌行)으로, 육조 때부터의 악부(樂府) 가행 형식과 육조의 부(賦) 형식을 종합하여 전개한 형식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과거 한대(漢代)의 환상에 젖게 하면서 목전의 현실을 풍자하는 교묘한 수법의 악부체 시로,

여기 나오는 인명은 한나라 사람이지만 당대 사람을 연상케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노조린(盧照隣,650~689)의 [장안고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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