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민심서>

​정선(精選) 목민심서 -정약용 저

728x90



 제5부
이전(吏典) 6조

1. 아전 단속[束吏]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하고 정사를 물 흐르듯 막힘없이 처리하는 것은 수령이 아전의 술수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의 문신은 젊어서 시부(時賦)를 익히고 무신은 젊어서 활 쏘기를 익힐 뿐, 이 밖에 배우는 것이라고는 노름이나 기생 끼고 술 마시는 일밖에는 없다.

그중에서도 나은 자는 구궁팔문(九宮八門)의 이치와 하도낙서(河圖洛書)의 명수(命數)를 공부하지만, 이 몇 가지로는 인간의 만 가지 일에 전혀 소용됨이 없다. 활 쏘기는 실제적인 일이지만, 이 또한 행정 실무와는 상관이 없다.

하루아침에 천리나 집을 떠나 홀로 뭇 아전과 만백성 위에 홀로 앉아 평생 꿈에도 못 본 일을 맡게 되니, 일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수령이 밝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겨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며 일단 호령질하고, 정사를 베풀 때 곡절을 묻지 않고 손 가는 대로 결재하여 처리하기를 물 흐르듯 쉽게 하면서 스스로 널리 통달하여 막힘이 없는 듯 자처하니, 이는 수령이 스스로 아전의 술수에 바지는 원인이다.

무릇 한 가지 명령과 한 가지 지시서(指示書)를 내릴 대라도 마땅히 수리(首吏)와 해당 아전에게 그 일의 근본을 캐어 보고 지엽을 밝혀내어 밑바닥까지 궁구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난 뒤에 결재를 한다면, 수십일이 지나지 않아 사무에 밝아져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

내가 오랫동안 읍내에 살면서 매번 들으면, 새로 온 수령이 까다롭고 일의 근본을 캐어묻는 경우에는 노회한 아전들이 서로 "고달플 징조인 것 같다"라고 말하지만, 일 처리를 물 흐르듯 쉽게 하는 경우에는 서로 웃으면서 "그 징조를 알 만하다"고 하니, 아전을 단속하는 요체가 진실로 여기에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