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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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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올바른 처신에 대하여


 

 

큰아버지 섬기기를 아버지처럼

너희들은 사고무친의 처지에서 성장하였지만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들이나 동생이 되어 아버지나 형님을 섬기는 법, 집안어른들을 섬기는 법에 대해서 아직 견문이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궁핍한 처지를 살아가는 방법에도 아직 익숙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내 몸과 마음을 다해 남을 대할 줄도 모르고, 남이 먼저 자기에게 도움 주기를 바라고, 가정에서 해야 할 처신도 잘 익히지 못했으면서 이웃사람들의 칭찬이나 바라고 있으니 될 법이나 한 일이냐.

 

전에 동지(同知)벼슬을 지낸 방계(傍系)의 고조할아머지뻘 되는 분이 계셨다.

 

일흔이 넘은데다 중풍을 앓으셔서 몹시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조반을 잡수신 후에는 날마다 지팡이를 짚고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 종손을 하루라도 안 만나볼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물며 너희가 일흔살 잡수신 노인께서 종증손(從曾孫)에게 한 것만큼도 큰아버지를 섬기지 않는대서야 말이 되겠느냐?

 

이후로는 날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먼저 안방에 들러 어머니의 안부를 살핀 다음 동쪽 집에 사시는 큰아머지께 문안을 드리고 돌아와서 독서를 시작하도록 하여라. 여러 숙모님들은 점심때나 저녁 무렵에 틈이 나는 대로 들어보면 된다.

 

큰아버지가 팔이 아팠을 때 너는 바로 찾아가 뵙고 뽕나무 벌레 똥을 주워다가 식초에 담근 쑥과 섞어 약을 달이고 약 달일 화로에 불을 피우고 약단지를 씻으며 곁에서 시중들고 아침저녁으로 늘 떠나지 않고 밤에는 모시고 자면서 연연해하며 차마 물러나지 못하는 그런 극진한 마음으로 그분을 봉양해본 적이 있느냐?

 

설령 너희들이 그렇게 극진히 섬겼다고 치자, 요즈음 그분이 긍휼히 보살펴주지 않으시더라도 너희는 오히려 더욱 효도하고 공경하며 예를 다하면서 감히 불쾌한 원망을 하지 말아야 될텐데 그렇게 하지도 못한 주제에 무슨 더 할말이 있느냐?

 

무릇 스스로 할일을 다 하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은 삼가하며 살아도 부형(父兄)들의 가슴엔 원망이나 불평들이 쌓일 수 있다.

 

평상시에는 이런 감정들을 내색 않다가 응당 간섭해야 될 일이 있을 때 때로 자기 모르게 폭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너희들은 그 일만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이 왜 내가 잘못한 일인가, 왜 이같이 처리하시는가'라고 서운해하겠지만 실은 오래전의 잘못 때문이지 단순히 이번 잘못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하거라.

독실하게 행실을 닦아 부형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도록 하여라. 큰아버지 섬기는 일에는 특별히 따로 정해진 예절이 없고 오직 자기 아버지 섬기는 것과 한가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너희들이 느낀 바 있어 진실된 마음으로 행실을 바르게 한다면 한달도 못 가서 큰아버지의 마음이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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