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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5년

<책속글-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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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시대를 떠받친 정치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황희일 것이다.

그는 세종8년(1426년)에 우의정에 제수된 이래 1449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정승 자리에 있었고,

1432년부터 1449년에야 비로소 영의정으로 치사할 것을 인정할 정도였다.

세종 재위 31년 중에 8년을 제외한 23년 동안 정승직을 수행했으니,

세종이 남긴 업적 중에 절반은 황희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52년에 황희가 죽자, 문종은 그를 세종의 묘정에 배향하는 교서를 내렸는데, 여기에 적힌 황희에 대한 평가는 이렇다.

 

큰일과 큰 문제를 결정하는 마당에서는 의심 나는 것을 귀신처럼 풀어줬고,

좋은 계책과 좋은 의견을 제기하여 임금의 결함을 미리 메워줬다.

임금에게 과오가 없도록 노력했으며, 백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소란스럽게 하지 않았고,

법과 제도는 자꾸 뜯어고치기를 싫어하였으며, 일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는 되도록 충실하고 후한 편을 취하였다.

인사 행정을 맡은지 16년 동안 인재들을 명백히 식별하였으며, 정승에 머문 24년 동안 나라가 반석처럼 든든해졌다.

아홉 번 과거시험을 맡았지만, 늘 좋은 선비를 뽑았다는 칭찬을 들었고,

노쇠하여 열 번이나 퇴직할 것을 청했지만 임금은 늘 '나를 도우라'는 말만 하였다.

임금은 그가 병이 나면 반드시 약을 내려보냈고, 그의 늙은 몸을 우대하여 몸을 기대는 궤와 지팡이를 내렸다.

4대의 임금을 섬겨오면서 충의심은 더욱 돈독했고, 나이 아흔 살이 되어서도 덕망과 지위가 높았으니,

실로 임금의 팔과 다리요, 나라의 기둥과 주축돌이었다.

 

<조선왕조실로>을 통틀어 그 어느 교서에서도 왕이 신하를 이토록 극찬한 내용은 없다.

그만큼 황희는 조선왕조사의 그 어느 신하보다도 거대한 족적을 남긴 정치가였다는 뜻이다.

 

출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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