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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속글귀-2016년

책속글귀- 보자기 인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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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반다리와 일본의 정좌법은 의자 위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확실히 방석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가방과 보자기의 대조적인 구조를 의자와 방석 사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방은 무엇을 넣든 그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누가 앉아도 의자의 형태는 바뀌지 않는다.
무엇을 넣기 전에도, 누군가 앉기 전에도 가방과 의자는 모두 그 주체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형태가 우선이다.
가방과 의자는 둘 다 무언가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넣는 물건이 없어도 빈 가방이 자기 스스로 혼자 걸어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자 역시 사람이 앉지 않을 때에도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응접실은 이 의자들을 앉혀놓기 위해 제공된 공간이다.
극던적으로 말하면 사람을 위해 의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자를 위해 사람이 있는 주객전도의 소외 현상이 나타난다.
의자가 왕좌를 의미하고 권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의자가 사람을 만들고 권위를 떨치는 것이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의자에 앉는 것은 원래 영예의 상징이었다'고 말한다.
[왕자와거지]이야기에서 보듯 누구나 왕좌에 앉으면 왕이 될 수 있다.
굳이 왕자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팔걸이가 있는 회전의자가 성공의 키워드로 사용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쌀 물건이 없어지면 무無로 돌아가는 보자기처럼,
방석은 앉은 사람이 서면 그와 동시에 없어져 버린다.
벽장이나 어딘가에 포개서 넣어두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보자기와 방석은 '넣는 물건'과 '앉는 주체'가 중심이다.
같은 보자기라도 싸는 물건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것처럼 방석도 앉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다른 것이 된다.

미리 일정한 공간에 배치되어 사람이 그것에 맞춰 앉는 융통성없는 응접실의 안락의자와 달리,
방석은 그때그때의 사람 수와 친밀도에 따라 '좌座'를 만들 수 있다.
마주 앉을 수도 있고 둥그렇게 둘러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가깝고 때로는 멀다.

출처: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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