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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독서HAZA365>/책소개,책속글귀-2019년

성학집요 제2절 수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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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글귀

 

성학집요

제2절 수기 중


 

안연이

"구체적인 조목[目]은 어떤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예가 아니면[非禮] 보지 말고[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勿言]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勿動] "

 

 

안연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제가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을 따라 행하겠습니다."

 

 

 

 

주자가 말했다.

"목(目)은 줄기와 가지가 되는 조목[悠件]이다. 안연은 공자[夫子]의 말을 듣고 이미 천리와 인욕 사이의 어름이 분명해졌다[判然].

그래서 다시 더 의문을 품지 않고 곧바로 그 조목을 물었던 것이다. 예가 아닌것이란 자신의 개인적인 것이다. 물(勿)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예가 아닌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인심(人心)이 주인이 되어서 사적인 것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의 기틀이다.

사적인 것을 이기면 행동과 표정, 사람을 대하는 가운데[動容周族] 예에 맞지 않는 것이 없고, 일상생활에 천리가 작용하지 않는 것이 없다.

안연은 그 이치를 마음속으로 알아차리고[默識] 스스로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곧바로 그 일을 자기의 임무로 삼고 의심하지 않았다."

 

 

 

또 말했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안에서 작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은 안에서 나온 것을 가지고 바깥을 대할 때 신중하게 하라는 것이다. 안팎을 함께 닦아 나아가면 인을 행하는 데 남김없이 힘을 쓸 수 있다.

성인의 말씀을 익숙하게 음미하여 안자(顔子)가 힘쓴 것을 탐구하는 기틀은 다만, 예가 아닌 것을 그만두거나 그만두지 않는 데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부터 돌이키면 천리가 되고, 여기서 더 흘러버리면 인욕이 되며, 여기서 잘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여기서 생각을 하지 않으면 뜻만 높은 사람[狂]이 되는데 이것은 다만 털끝만 한 차이일 뿐이다. 배우는 사람이 몸가짐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물었다.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저절로 눈을 돌리고,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저절로 귀를 기울인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자가 말했다.

"예에 맞지 않은 미인이 비록 눈앞을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그것을 보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고 예에 맞지 않은 음악이 비록 귀를 스친다 하더라도 나에게 그것을 들으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자가 말했다.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이 네 가지는 몸의 작용인데 마음[中]에서 나와 밖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밖을 다스리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수단이다.

안연은 이 말을 일삼았기 때문에 성인의 경지에까지 나아갔다. 후대에 성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이 가르침을 명심하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 때문에 '잠(箴)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한다.

 

 

[시잠(視箴)]은 이렇다.

'마음이란 본래 공허한 것. 사물에 반응하되 자취가 없네. 마음을 간직하는 요령이 있는데, 보이는 것이 그 법칙이 되네.

사물이 눈앞을 가리면 마음이 옮겨가니 밖을 다스려서 안을 편안하게 하여야 한다. 자기를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 오래도록 유지하면 성실하게 되리라.'

 

 

섭씨가 말했습니다.

"눈은 한 몸의 밝은 거울이며 오행(五行) 정화가 모인 것으로서 마음과 가장 밀접한 것이다.

눈이 움직이면 마음이 반드시 따라가고 마음이 움직이면 눈이 반드시 그곳으로 쏠린다. 텅 비고 신령한 마음은 온갖 변화와 조화를 이루는데 그것을 단속하려면 먼저 보는 것을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

 

 

[청잠(聽箴)]은 이렇다.

'사람에게는 떳떳한 인륜[秉彛]이 있으니, 타고난 성품[天性]에 뿌리를 두었네. 지각이 사물의 유혹을 받아 동화되면 마침내 그 올바름을 잃어버린다.

우뚝한 저 선각자들은 그칠 데를 알아야 의지할 방향이 정해지니 사심을 막고 성실을 보조하여[閑邪有誠]예가 아니면 듣지 않았다.'

지각이 사물의 유혹을 받아 동화된다는 것은 마음이 사물의 유혹을 받아 동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본체는 본래 바르지만 사물의 유혹을 받아 동화됨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그 바름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언잠(言箴)]은 이렇다.

'마음이 움직임은 말로 인한 것. 조급하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고요하고 오롯해지네[靜專].

하물며 말이란 싸움을 일으키고 우호를 맺는 기틀임에랴! 길하고 흉하고 영예롭고 욕된 것은 오직 말이 불러들인다.

쉽게 말을 하면 허탄하고[誕] 번거롭게 말을 하면 뜻에서 벗어난다[支] 함부로 말을 하면 상대편이 싫어하고 가는 말이 어긋나면 오는 말도 어긋난다.

법도가 아니면 말하지 말 것이니 이 가르침을 공경하여 잘 받들라.'

진씨(陳氏)가 말했습니다.

"지(支)는 줄기에서 곁으로 뻗어나간 나뭇가지와 같은 것이니 몸통에서 옆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곧 마음을 번거롭게 함으로써 생기는 실수이다."

 

 

[동잠(動箴)]은 이렇다.

'철인(哲人)은 기미를 알아차려 생각[思]을 성실하게 하고, 지사(志士)는 행실에 힘을 쏟아 행위에서 뜻을 지킨다.

이치를 따르면 여유롭고 욕망을 따르면 위태롭다. 잠시라도 생각하고 조심하며 경계하여 스스로를 붙들어라. 습관이 성품대로 이루어지면 성현과 같이 된다."

 

 

주자가 말했습니다.

"생각[思]은 움직임의 기미이고, 행위[爲]는 움직임이 드러난 것이다. 생각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행위는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신이 생각건대, 습관이 성품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익숙한 행위는 오래 쌓여 습관이 이루어지면 마치 타고난 성품[天性]에서 우러나오는 것과 같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른바 '어려서부터 형성된 것[小成]은 마치 천성(天性)과 같고 습관은 마치 저절로 그러한 것[自然]과 같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성품이란 맨 처음에 받은 기질의 성을 말하는 것이지 본연의 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자가 말했다.

"이 장의 문답은 바로 핵심적인 법[心法]을 전수해주는 절실하고 중요한 말이다. 지극히 밝지 않고서는 기미를 살필 수 없고 지극히 굳세지 않고서는 결단을 내릴 수 없다.

정자의 '잠(箴)'은 친절하게 표현하고 밝혔으니 배우는 사람은 더욱 깊이 음미해야 한다."

자기를 극복하는 것은 자기에게 절실한 공부이며 기질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에 정자와 주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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