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뒤에야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
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중국 명나라 문인 진계유
나이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지.
세월 속에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보고 난 뒤
내 이마의
주름살들을 보고 난 뒤.
난 그에게 대답했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사실 난 아무것도 세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는.
그가 나에게 말했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설명해 주세요.
그래서 난 말했지.
어느 날 불시에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에게
입을 맞추었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입맞춤을.
나의 날들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만을 세지.
왜냐하면 그 순간이
정말로 나의 모든 삶이었으니까.
-이븐 하짐

[뒷표지글]
시는 인간 영혼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을 멈추고 듣는 것'이 곧 시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구엘 드 우나 무노는
'슬픔의 습관을 떨쳐 버리라.
그리고 그대의 영혼을 회복하라고 말한다.
좋은 시는 치유의 힘,
재생의 역할을 하며 읽는 이의 영혼의 심층부에 가닿는다.
인간의 가슴은 돌과 같으며,
그것은 다른 돌에 의해서만 깨어질 수 있다.
생을 다 보낸 뒤,
어느 날 우리는 '육체라는 이 이상한 옷'을 벗어던진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옷깃이 해지고 단추가 떨어져 나간.………….
당신이 아직 젊다면 이 진실을 가슴에 새겨야 하리라.
삶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만일 당신이 이미 이것들을 경험할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면 이 진리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삶에 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비슬라바 쉼보르스카가 썼듯이 삶에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 실습 없이 죽는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고/서로 닮은 두 밤도 없다. /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하나 같은 두 눈맞춤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