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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부, 경전공부에 대하여) -정약용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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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1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폐족은 백배 더 노력해야 한다

答二兒


 

경전공부에 대하여

 

나는 예(禮)에 관한 경전연구를 귀양살이의 굴욕과 쓰라림 속에서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 의리의 정밀하고 오묘함은 마치 파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는 것과 같다.

 

네가 왔을 때 해주었던 이야기들은 거의가 정말하지 못한 겉껍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 써놓은 것들은 대부분 버릴 작정이다. 해가 다가기 전에 이론의 실마리를 대략은 파악해놓아야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국의 진나라 한나라 이후 수천년이 지난 지금 수천리 떨어진 요동만 동쪽에 위치한 조선에서 공자.맹자 시대의 옛 예를 다시 파악해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저서가 이루어지는 대로 네게 보내서 다시 한벌 정리해 베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만 뜻대로 될지 모르겠구나.

 

다만 한스러운 것은 내가 깨달은 명언이나 지극한 세상 이치를 이야기할 곳이 없는 것이지만 어쩌겠느냐? 마융(馬融)이나 정현(鄭玄)*은 비록 유학자지만 권세가 한세상을 눌러, 외당(外堂)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면서도 내당(內堂)에서는 노래하는 기생을 두고 즐겼을 정도로 번화하고 호사스런 부귀를 누렸다.

 

그러니 의당 경전연구에는 정밀하지 못했으리라. 그분들 뒤로 이어지는 공안국(孔安國)*이나 가규(賈逵)* 등도 유림 가운데서는 이름난 사람들이지만, 마음이나 기상이 정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논리 또한 아리송한 곳이 많다.

학자란 궁한 후에야 비로소 저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매우 총명한 선비라도 지극히 곤궁한 지경에 놓여 종일 홀로 지내며 사람이 떠드는 소리라든가 수레한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각에야 경전이나 예에 관한 정밀한 의미를 비로소 연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란 게 이렇듯 교묘할 수 있겠느냐? 옛날 경전들을 고찰하고 나서 정현이나 가규의 설을 살펴보니, 거의 대부분이 잘못 해석되었더구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처럼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남의 저서에서 도움이 될 만한 요점을 추려내어 책을 만들 때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학문에 주견이 뚜렷해야 판단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취사선택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다.

 

학문의 요령에 대해서는 전번에 대강 이야기했는데 너희들은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왜 남의 저서에서 요점을 뽑아내어 책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의심나는 것이 있다고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느냐?

 

무릇 책 한권을 볼 때 오직 나의 학문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으면 추려 쓰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도 눈여겨볼 필요가 없는 것이니 백권 분량의 책일지라도 열흘 정도의 공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고려사]에서 초록(​錄)하는 공부는 아직도 손을 대지 않았느냐? 젊은 사람이 멀리 보는 생각과 꿰뚫어보는 눈이 없으니 탄식할 일이로구나. 너희들 편지에 군데군데 의심이 가고 잘 모르는 곳이 있어도 질문할 데가 없어서 한스럽다고 했는데, 과연 그처럼 의심이 나서 견딜 수 없다면 왜 조목조목 적어도 인편으로 부치지 않느냐? 아버지와 아들이면서 스승과 제자가 된다면 더욱 좋은일이 아니겠느냐?

학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인 효와 제로써 그 근본을 삼고, 예와 악(渥)으로써 수식을 하며, 정치와 형벌로써 도움을 주고, 병법(兵法)이나 농학(農學)으로써 그 이익을 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병법에는 부역이 포함되고 농학에는 재화 등이 포함됨- 지은이),

 

초서하는 요령은, 한종류의 책을 펴면 그 책 속에 들어 있는 명언이나 선행(善行) 중에서 [소학]에는 없지만 [소학]에 넣어도 될 만한 것이 있다면 골라 쓰는 것이다.

 

무릇 경전의 설(設) 가운데서 새롭고 근거가 있는 것은 채록하고([예경]도 같음-지은이), 글자의 근원, 구성원리 체(體) 음(音) 의(義) 등에 관한 연구나 음운학에 관한 연구는 열가지 중에 하나 정도 채록해야 한다.

 

가령 [설령(設鈴)] 가운데 [유구기정(琉球記程]과 같은 것은 병법에 관한 것으로 취급해서 채록하고, 농학이나 의학에 관한 여러 학설은 먼저 집에 책을 들춰보고 아직까지 없는 학설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뽑아 적어야 한다.

마융.정현: 중국 후한(後漢) 때의 훈고학(訓告學)의 대가이며 경전 주석자.

공안국: 중국 한나라 때의 학자로 공자의 11대손. 공자가 살던 집 벽에서 나온 과두문자로 쓰인 고문 경서를 금문(今文)으로 번역하여, 이로부터 고문학(古文學)이 시작되었다.

가규: 중국 후한 때의 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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